전략의 귀재들 곤충 For Love of Insects 2부
토머스 아이스너Thomas Eisner 지음 - 김소정 옮김 - 삼인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읽은 내용인 것 같다. 아이스너는 살아오는 동안 곤충에 대해서 언제난 흥미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관심이 어느 정도냐 하면, '어두운 밤에 자동차를 타고 국도를 달리다가 아스팔트 바닥을 기어가고 있는 노래기를 발견하고 다시 후진하여 사진을 찍는' 열정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곤충의 세계에 푹빠진 유명인사들이 많이 있다. 한국에는 누가 있을까? 16세기 신사임당의 초충도, 18세기를 살다간 변상벽의 묘작도가 떠오른다. 한편 19세기에서는 유럽의 금융시장을 장악한 '로스차일드Rothschild' 패밀리와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을 쓴 '찰스 다윈Charles Darwin' 도 빼놓을 수 없다.

다윈은 열렬한 곤충 애호가였다. 그 수준이 어느 정도냐 하면 '삶과 편지들Life and Letters' 에 나온 다음의 일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언젠가 썩은 나무껍질을 벗기다가 처음 보는 딱정벌레 두 마리를 발견했다. 나는 한 손에 한 마리씩 거머쥐었다. 그 때 또 다른 한 마리가 보였다. 이 신종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냉큼 손에 쥐고 있던 한 마리를 입에 넣고 다른 손으로 세 번째 딱정벌레를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아뿔싸. 입 속에 집어 넣은 딱정벌레가 혀를 태워버릴 것처럼 아주 매섭고도 따가운 액체를 뿜어내는 게 아닌가.

그의 이러한 자세야말로 7차원에 도달하여 화이트홀로 남게 된 원동력이다.
한편, 월터 로스차일드Walter Rothschild 는 팔레스타인 땅을 유태인 정착지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매진했던 정치가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대중에게 덜 알려진 사실은 그가 한 평생을 나비에 심취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부유한 금융재벌은 --전문적인 채집팀을 꾸며서-- 나비목 곤충을 수집했는데, 그 수가 무려 225만 마리였다. 가희 정열적이다 못해 중독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여간 이 방대한 컬렉션을 대영박물관에 기증하여 오늘날 세계에서 나비/나방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 되었다.

또한, 월터의 형제인 찰스 로스차일드Charles Rothschild 도 기벽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열차를 타고 가다가 희귀한 나비를 발견하면 기차를 멈추게 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졌다. 괴짜 기질이 넘쳐났던 이 인물은 벼룩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찰스의 딸 미리엄 로스차일드Miriam Rothschild 는 아버지가 모은 수백만 종의 벼룩을 여섯 권의 책에 담으면서 스스로를 '벼룩 아가씨Flea Lady' 이라고 칭했다. ㅎㅎㅎ. 가풍을 이어받아서 미리엄도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생물학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아아!! 발동이 걸렸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내친김에 8차원으로 가자. 이번에는 개똥벌레의 발광신호를 해독하는 장면이다. 이를 처음 연구한 사람은 프랭크 A. 맥더모트Frank A. McDermott 이며, 그의 연구를 확장시켜 제임스 로이드James Lloyd 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논문에 의하면, 개똥벌레 숫놈의 반짝임이 끝나고 암컷이 반응하는 데 걸리는 그 미묘한 시간차가 해답이었다. 또한 동종포식에 대한 습성도 알아냈는데 --곤충세계에서 암놈이 수컷을 잡아먹는 것은 흔한 일이다--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배우자를 포식함으로써 알을 낳는데 필수적인 영양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서 천적으로부터 어미 자신과 알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이용된다. 예를 들어 '포투리스속Photuris' 암컷들은 '포티누스속Photinus' 숫놈을 잡아먹는데, 그 방법이 교묘하기 이를데 없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종임에도 불구하고 암놈은 발광신호를 조작하여, 포티누스 수컷이 교미를 위해 접근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는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어 미친듯이 씹어 삼킨다. 로이드의 이러한 연구가 1964년에 발표되었으며,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간 실험을 한다. 공동 연구에서 실험자들은 새로운 혼합물을 발견하고, --'빛을 내는 자' 라는 라틴어인 루시퍼를 본따서-- '루시부파긴Lucibufagins' 이라고 명명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포투리스 베르시콜로르Photuris versicolor' 체내에는 이 화합물이 있기는 하지만, 항상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웠고 이를 증명해 나간다. 즉, 암컷은 루시부파긴을 얻기 위해서 '포티누스 이그니투스Photinus ignitus' 를 먹는것이 아닌가?

실험에 따르면, 개똥벌레의 천적인 거미나 새들은 루피부파긴이 축적된 알이나 어미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반면에 이 물질이 없는 암놈과 알, 애벌레는 살아남지 못했다. 결국 다른 종의 숫놈을 포식하는 행위는 종족보존을 위한 진화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또 한가지 특이한 사실은 개똥벌레가 반사출혈reflex bleeding 이라는 형태로 이 화학물질을 방출한다는 점이다. 즉, 곤충의 바깥 껍질인 큐티클이 아주 쉽게 찢어지면서, 이 상처부위로 루시부파긴이 섞인 체액이 방울방울 스며 나온다. 이와 비슷한 --외상성 수정-- 방식으로 수렴진화한 생명체가 바로 빈대다.

이 부분에 흥미가 있는 독자라면 필자의 또 다른 서평인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A Field Guide to Household Bugs - 조슈아 아바바넬이 찍고 제프 스위머가 쓰다 - 함께 읽는 책' 를 읽어보길 바란다.

 

 

자. 탄력을 얻어 9차원에 도전한다. 단칼이 즐겨 마시는 차tea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도 흥미롭다. 미국 독립전쟁의 여러가지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보스턴 차사건' 이다. 이는 본인의 홈페이지에서 충분히 다룬 내용이므로 링크로 대신하겠다.     ■■■ 미국독립전쟁과 차 ■■■

하지만, '연지벌레Dactylopius coccus' 가 이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사실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것 같다. 저자가 밝힌 속사정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 멕시코로 알려진 아즈텍 문명에서는, 선명한 빨간색을 얻기 위해 연지벌레를 잡아서 그걸 으깨어 염료를 만들었다. 이 진홍색의 색소를 코치닐cochineal 이라 한다.

고대로부터 정열의 붉은색은 모든 색상 가운데 으뜸으로 쳤으며 통치권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다. 에스파냐의 약탈자인 '에르난 코르테즈Herna'an Corte's' 는 당시의 황제였인 '목테주마Moctezuma' 의 화려한 의상을 보고 넋이 빠진다. 이것이 유럽 역사에 최초로 등장한 코치닐의 발견이다.

아뭏든 1600년이 되자 이 안료는 멕시코의 주요 수출품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금과 은에 이어서 세 번째로 귀중하게 여겨지던 교역품이었다. 때문에 스페인은 코치닐 생산 과정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고, 그 원료가 되는 연지벌레의 수출을 금지했다. 그러나 비밀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었다.

이러저러한 노력끝에 그 숨겨진 베일이 벗겨지고 미국 상인들은 식민지에서 직접 코치닐을 사들이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영국인 중간상인들이 웃돈을 요구하며 갖은 횡포를 일삼게 된다. 이와 같은 여러 불평등한 무역과 그동안 쌓인 불만이 폭발하여 독립전쟁의 신호탄이 된다.

참고로, 이 염료의 붉은색은 지금에 와서는 딸기우유를 만드는데 첨가하기도 한다. 그렇다. 우리는 연지벌레를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이다. :-) 이처럼 벌레와 인류는 오랜시간에 걸쳐서 진화의 역사를 같이 써왔다.

 


 

우리는 십진법을 만들어냈다. 따라서 차원 여행도 10차원까지는 가능할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이 어떻게 곤충을 활용해왔는지 살펴보자. 그대들은 과거로부터 최음제 혹은 독약으로 사용되어 온 '칸타리딘cantharidin(가뢰라는 딱정벌레의 분비물)' 에 대해 알고 있는가?

1893년, 변방의 프랑스 의학 잡지 [군 의약학 자료집 Archives de Me'decine et de pharmacie Militaires] 에 아주 기가 막힌 연구결과가 한 편 실렸다. 논문의 저자는 프랑스군과 함께 생활하면서 특이한 의료 사고들을 목격한 'J. 메니에르Meynier' 라는 의사였다.

알제리로 행군하던 군인들이 원인모를 복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 병증은 입이 마르고 갈증이 나면서 체온이 떨어짐과 동시에 맥박이 감소한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구역질과 불안감의 엄습, 소변을 자주 누게 되는데 그때마다 생식기에 통증을 유발하는 증세였다. 무엇보다 난감한 것은 발기가 고통스럽게 장시간 지속된다는 사실이었다.

이와 같은 발기통은 이미 고대로부터 알려진 것이었기에 메니에르는 '가뢰Cicindelidae' 로 인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했다. 그는 군인들에게 뭔가 특이한 것을 먹지 않았는지 물었다. 환자들은 근처에서 개구리grenouilles 를 잡아먹었다고 말한다. 당시 프랑스인들은 개구락지의 뒷다리를 아주 좋아해서 즐겨먹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강가로 내려간 의사는 많은 개구리가 가뢰과 딱정벌레를 삼키는 것을 보았다. 바꿔 말해, 칸타리딘이 개구리의 체내에 축적이 되어 이를 먹은 병사들을 고통스럽게 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병세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져버렸다. 그렇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부디 조심하길 바란다.

천연의 비아그라인줄 알고 가뢰를 먹었다가는 목숨을 잃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100 밀리그램이라는 아주 작은 양만 있어도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가뢰과 딱정벌레 몇 마리만 먹어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실제로 상당수의 가축들이 가뢰를 멋모르고 삼켜서 죽기도 한다.

 

한편, 옛날부터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칸타리딘의 환약을 '사랑의 알약pastilles galantes' 으로 생각하고 복용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새디즘Sadism' 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도록 한 '마르키 드 사드Marquis de Sade' 가 성매매 여성들을 죽이려고 이 화합물을 악용하기도 했다.

사실, 살인보다는 환각성분에 빠져서 환락의 밤을 보내려 했을 테지만.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프리드리히 대제 시대에는 결핵과 광견병 치료에 이용하기도 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사약을 만들때 집어 넣기도 했다. 참고로 칸타리딘은 1810년에 분리해 내는데 성공했으며 1941년에는 원자구조가 밝혀졌고 합성에 성공한 때는 1953년이다.

 

자, 드디어 차원여행을 마무리할 시간이다. 이 책은 이렇게 전문적인 내용과 재미난 이야기가 담뿍 담겨져 있다. 파브르 곤충기 이후 매우 흥미롭게 읽은 서적이다. 단칼이 곤충세계에 푹 빠진 이유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곤충을 벌레라 칭하며 관심두지 않는다.

경제적 이득이 없는 한 그것들은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돈이 되지 않는 것에 몰두하라. 그러면 저절로 명성을 얻게 될 것이며 무엇보다 그 작업은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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