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 이펙트: 무엇이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3
The Lucifer Effect : Understanding How Good People Turn Evil

필립 짐바르도 Philip George Zimbardo 저 / 이충호, 임지원 공역 / 웅진지식하우스

 

피해망상으로 허물어지는 피험자.
둘째 날, 처음으로 이탈자가 생겼다. 재소자 중 한 명이 중도에 그만 두고 떠나기를 원했다. 그는 신경쇠약과 함께 약간의 정신분열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실험에서 빠지겠다고 한다. 그런데 아.연.실.색.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짐바르도는 그 수감자를 진정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떻겠나? 교도원들은 더 이상 자네를 괴롭히지 않고 자네도 실험 기간을 다 채워 약속한 돈을 받고 여기를 나서는 거야. 그 대신 자네가 할 일은 이따금씩 내가 이 교도소를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알려주는 거지. 이따금씩 말야. 어떤가? 내 제안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라구. 지금 당장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네. 곰곰히 생각해 보고 오늘 저녁에 결정하게. 알았나?"

소름이 끼친다. 이 부분에서 필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실험 책임자는 그에게 밀고자 역할을 하라고 회유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악마적인 술책이 아닐 수 없다. 저자가 책에서 밝혔듯이 그는 거부하기 힘든 파우스트적인 거래를 제안하고 있다. 선량한 교수가 아니라 사악한 교도소장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처럼 한번 시스템이 작동되면 그것은 기이한 생명력을 갖는다. 파국이 오기 전까지는 멈추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중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상황에 몰입되면 피아의 구분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는 객관적인 시선이라는 것이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다는 얘기다.

계기만 주어지면 누구나 악마, 그 이하가 될 수 있다. 실험으로 돌아가서, 그 재소자의 다음 행동을 살펴보자.

"제기랄, 난 저 안에서 미쳐 돌아가고 있어.....난 나가고 싶어... 여긴 모든 것이 끔찍해! 난 하룻밤도 더 버틸 수가 없어"

그는 큰 소리로 울부짖고 소리를 질러댄다. 참고로 이 수감자는 대학에서 반전운동을 주도하는 지도자 역할을 맡았던 사람다. 그랬던 그가 단지 서른여섯 시간 만에 허물어지고 말았다.이에 연구자들은 긴급 회의를 갖고 그를 내보내기로 결정한다. 다행스런 일이다. 그런데 몇몇 스태프는 해당 수감자의 연기에 속아넘어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도대체 그가 뭣 때문에 거짓 연극을 한 단 말인가? 단지 2주일만 버티면 약속한 돈을 받을 수 있는데 말이다. 이 상황에서 연구진들은 피험자 선발에 뭔가 실수가 있었을 것이라고 자신들을 합리화 시킨다. 그들은 SPE 실험이 한 개인을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무시했다. 나중에 실험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간이 좀 흐른 뒤 우리는 명백한 모순을 깨달았다. 우리 연구에서 나타난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 '기질적 설명' 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 연구를 통해서 우리가 도전하고 비판하고자 했던 바로 그런 사고 방식을 가지고 말이다."

 


 

뜬소문이 모두를 집어삼키다.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첫 이탈자가 생긴 후에 실험에 남아 있는 입감자들 사이에 헛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석방된 그 친구가 동료들과 규합하여 교도소를 끝장내고 재소자들을 해방시킨다는 내용이었다. 데자뷰! 음모론의 등장이다. 뒤를 이어 단칼의 멘탈을 붕괴시키는 사태가 일어났다.

연구진들마저 이 뜬소문에 동화되어 임시 형무소를 방어하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기로 했던 것이다. 실험진들은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모의 교도소를 진짜 시립 교도소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심각한 피해망상이 그들 모두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총책임자이며 감독관인 짐바르도는 진짜 경찰서로 가서 진짜 경찰을 만나고 진짜 교도소 사용 허가를 얻어냈다. 참가자 모두가 이 상황을 실험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이제 SPE는 실제가 되었다. 아울러 연구진들은 형무소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밀고자를 활용하기로 했다. 석방된 한 명을 대신해서 실험자 중 한 명이 스파이가 되기로 했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죄수가 되어 실험에 참가했다. 현실이 되어버린 감옥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마주하기가 정말로 두렵다.

 

 

이제 교도소라는 환경에서는 모든 일상이 지배와 복종을 학습하는 장으로 변질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대부분의 재소자들은 교도관에게 맞서는 것을 포기했다.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교도원들에게 피해망상이 나타났듯이 입감자들 사이에서는 과대망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예컨대 '이 실험을 아무 때나 그만둘 수 없다' 는 생각이다. 여기서 끄나풀로 심어진 수감자의 심리 변화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게 된 교도관들의 성격 변화는 특히나 주목해야 한다. 먼저 자진해서 정보원이 된 피실험자의 말을 들어보자.

"도저히 이 친구들의 눈앞에서 그들을 배반할 수 없었다......내가 다른 수감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다......다를 게 있다면 나는 언제 이곳에서 나가게 될지를 알고 있다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 사실도 점점 불확실하게......이 상황에 증오를 느끼고......혐오감, 죄책감, 두려움 속에서....."

스파이로써 그는 수감자들의 비밀스런 정보를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대로 전하지 못하고 갈등한다. 수용자 집단에 동화되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역할의 변화는 그를 실험의 관찰자에서 죄인으로 변하게끔 만들었다.
교도관 역할을 맡은 피실험자도 정체성이 바뀐다.

"복종하지 않는 입감자에게 벌을 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머지 수감자들이 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했다........나는 점점 화가 났고 이 행동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 상황이 나에게 영향을 주도록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나의 역할 뒤로 깊숙히 숨겼다. 그것이 나 자신을 다치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한편, 계속되는 괴롭힘에 지친 재소자들은 그들의 불만 사항을 정식으로 교도소측에 요청한다. 예컨대 화장실 사용 제한을 풀어달라거나, 식사 전에 수도물로 손을 씻을 수 있게 해주거나, 샤워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등등이다. 이러한 개선 사항을 적어서 교도관에게 건넨다. 아니 전달하려고 하면서 교도원의 눈치를 살핀다.

그리고는 지레 겁을 먹고 갑자기 제안 사항이라고 말을 바꾼다. 해당 교도대원은 최대한 감정을 숨기면서 무표정하게 알았다고 대답한다. 이 과정에서 터무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 수감자가 그 요구 목록을 교도관에게 건네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의 정당한 요구를 상부에 전달해주도록 바라면서도, 정작 그 목록은 주지를 않는다니 이 보다 더 황당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있다. 교도대원과 입감자 대표, 둘 다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매우 중차대한 통찰력을 발휘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의 씨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권위주의적 상황에 민주적인 것과 비슷한 무엇인가를 제공하는 것이다....... 사실 재소자들이 자신들의 목표를 성취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그들은 불만을 공개적으로 털어놓고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그것을 전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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