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 이펙트: 무엇이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2
The Lucifer Effect : Understanding How Good People Turn Evil

필립 짐바르도 Philip George Zimbardo 저 / 이충호, 임지원 공역 / 웅진지식하우스

 

탈개인화와 비인간화의 시작.
SPE 실험이 시작되었다. 이 연구의 책임자인 필립 짐바르도는 스탠퍼드 대학교에 연구를 위한 감옥을 임시로 만들었다. 그리고 피실험자들을 죄수와 교도관의 역할로 나누었다. 그밖에 실제 상황처럼 느껴지도록 모든 절차를 고안했다. 첫째날, 수감자들이 이 교도소에 들어오며 입감절차가 진행된다.

죄수복을 입히기 전에 소지품 검사를 하고 온 몸을 약품으로 소독한다. 입감자들은 모두 눈가리개를 하고 있으며 원피스 형태의 단순한 옷에 식별번호가 앞뒤로 붙어 있다. 또한 머리에는 나일론 스타킹을 뒤집어 쓰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개성의 표식을 지워버리고 감옥 특유의 익명성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게다가 이들은 발목에 쇠사슬을 찼기 때문에 그들이 감금되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며, 속옷도 입지 못했기에 허리를 숙일 때마다 엉덩이가 드러난다. 반면에 교도원들은 집단의 유대감을 갖게 만드는 특유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 아울러 선글라스와 곤봉을 손에 쥐고 있는데, 이 복장과 도구가 의미하는 바는 뒤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서 첫번째 나쁜 징조가 나타난다. 일부 교도대원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수감자의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조롱의 말을 뱉어낸 것이다. 성기가 작다느니 고환이 짝짝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입감 절차가 끝나고 머리에 쓴 스타킹을 벗겨냈다. 각 죄수에게 감방이 배정되고 점호가 이어진다.

교도관이 식별번호를 말하면 해당자는 감방앞에 서서 큰 소리로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한 개인을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부르는 것은, 그로부터 인격을 제거시키는 비인간화의 간악한 행위다. 희생자를 짐승이나 물건으로 취급하여, 가해자가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파괴적인 행동할 수 있게 해준다.

죽임을 당한 야생동물을 발로 밟고 기뻐하는 사냥꾼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한 사례,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에서 일어난 학대 사진등을 생각해보라. 반면에 재소자들이 교도원을 대할 때는 언제든 누구도 예외 없이 '교도관님' 이라는 칭호를 써야 했다.

이것은 교도대원들을 탈개인화(depersonalization) 시키는 전형적인 행위다. 이 단어는 교도관 모두에게 공통의 정체성을 부여한다. 여기에 제복을 갖춰입고 선글라스를 착용함으로써, 집단의 연대감을 공고히 하며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있게 해준다.

윌리엄 골딩(Sir William Gerald Golding)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게 만든 '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 에서는 탈개인화 된 소년들이 얼굴에 시커먼 칠을 하고 가엾은 동료 희생자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이 나온다.
고대의 전사는 전투에 나서기 전에 마스크를 쓰고 온 몸에 재를 묻혔다. 현대의 군인들도 위장 크림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다.

이와 같은 행위는 자신에게 혹은 집단에게 또 다른 인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을 때, 다시 말해 익명성의 상황에서는 도덕성이나 책임감이 사라져버린다. 그리하여 폭력이나 파괴와 같은 반사회적 행동을 손쉽게 저지르게 한다.

 


 

점호는 재소자의 탈옥 여부, 건강 상태 등을 확인하려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갈 수록, 교도관들의 권위를 드러내고 과시하는 행위로 변질이 되어간다. 점점 야비하게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입감자들이 복도에 줄지어 선다. 한 교도원이 명령한다.

"좋다. 제군들. 너희가 잘 하면 잘 할수록 빨리 끝날 거다...... 입 다물고! 이 짓을 밤새 하고 싶은가?......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안 들린다. 너무 느려터졌어......처음부터 다시 시작.......그만! 그게 큰 소리인가? 말귀를 못 알아 들었군. 큰 소리로 분명하게......자 이번에는 거꾸로 실시하도록 한다.....이봐, 누가 웃으라고 했지? 너희가 제대로 할 때까지 밤새도록 계속할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상황이 아닌가? 쥐꼬리만한 권력이 주어지면 그것을 필요 이상으로 남용하고 오용하고 악용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 중 하나다. 물론 수감자들이 처음부터 교도대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른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이 실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에, 서로가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웃고 떠든다.

그러나 교도관들이 그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지속적으로 수감자들을 윽박지르다보니, 서서히 주눅이 들면서 자존감을 상실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 의해서 이제 수형자 집단은 아무 말도 없이 시무룩해지며 서로 눈길도 주고받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환멸이 느껴지는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교도대원 사이에서 권력 투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배력을 놓고 두 명의 교도원이 암투를 벌인다. 그 불똥은 재소자들에게 튄다. 더욱 창의적인 방법으로 더더욱 악질적인 방식으로 수형자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즉,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악랄한 방법을 고안해 낸 자가, 교도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다. 이 실험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하루 해가 저물기도 전에, 교도소의 규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2명의 수감자가 독방에 갇혔다. 이 결과로 피실험자들은 공동으로 불복종 운동을 펼쳐서, 교도관들의 겁박에 저항하기로 한다. 반면에 교도소장과 그 일당들은 수형자들을 바싹 조여야겠다고 결정했다. 곧이어 권력을 오용한 비열한 보복이 시작된다.

입감자들이 자신의 담요를 덤불 위로 질질 끌어가게 만들어 가시가 잔뜩 박히게 한다. 잠을 자려면 이 바늘을 빼야 한다. 하등 쓸모없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잡일을 시키는 것이야말로 교도관의 권력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다. 게다가 다른 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 못하게 함으로써 탈옥을 예방할 수 있는 부수적 효과도 있다.

이처럼 여러가지 악의적인 방법으로 시달림은 계속 된다. 예를 들어 '나는 병신 같은 놈이다' 라고 반복해서 외치게 한다거나, 잠을 재우지 않는다거나, 화장실 사용을 제한하거나, 샤워를 금지하거나 가족들의 면회를 불허하는 등의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면서도 교도관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나중에 실험이 중단된 후에 일부는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고백하기는 한다. 제복을 입었을 때 행한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이때 당시의 상황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인터뷰에서 교도대원들은 수감자들과 단 둘이 있을 때에는 거친 교도관 역할을 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고 술회한다.

또한 형무소라는 배경을 떠나서는 한 없이 약해지는 자신의 초라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런 감정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더욱 강압적인 방법을 써야 했었다고 밝힌다. 절대 권력이 주어진 상황,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환경, 유니폼이 가져다 주는 익명성,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평소에는 할 수 없었던 매우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행위를 주저없이 저지르게 만든다.

 


이전 루시퍼 이펙트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