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차의 세계화와 보편성
동종은 일본의 육종실험으로 개발된 차나무로, 일제에 의해 보성지역등에 대단위 다원이 조성되어 현재 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조차 생리적인 부작용이 많아 점차 외면을 받는 차나무로써, 그 수명이 다하여 설자리를 점점 잃고 있다.

이 종의 특징은 다수확 이란 점이다. 따라서 대량생산을 위해 비료와 살충제 없인 잘 자라지 못한다. 이러한 원인으로 인해 인체에 좋지 못한것은 당연하며, 일본에선 수전증, 시력감퇴, 손발저림, 식욕부진등의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보고가 많이 있다.

이처럼 야부기다는 일본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쪄서 만드는 차에 적합하게 개발된 것이라, 한국식인 덖음차로는 맞지 않는다. 게다가 대량생산을 위해 기계로 작업을 하기에 차의 질이 저하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방식으로 기업화 된 차 밭들은 철저히 계획된 경영방식에 의해서, 기계수확이 가능하도록 구획 정리가 반듯반듯하게 조성되어야 하며, 그 품질은 한참 떨어져 주로 티백제품에 사용되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현미 녹차로써 중국 등지에서 수입된, 불순물이 많이 섞인 저질 찻잎에 풀냄새를 제거하기위해 현미를 가미했다.

이러한 변종이나, 야부기다종을 기계따기로 해서 만든 차는 우려내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일단, 우려낸 잎이 원형 그대로 풀어지지 않고 거칠게 뜯어진 단면을 그대로 볼 수 있으며, 줄기같은 불필요한 부분이 섞여있어 맛이 떨어짐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 차 생산 과정에서의 대량생산을 위한 기업화와, 인간의 이기심으로 변종된 차나무의 찻잎은, 현재 우전이니 세작, 수제차등의 이름으로 몇몇 농가들이 조합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또한, 세작이니, 중작이니 하는 단어들도 일본의 녹차를 만드는 기준에서 나온 말이지, 우리의 전통 자생차에 이를 그대로 접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도대체 크기를 기준으로 차의 품질을 평가한다는게 이해가 가지 않는 발상이다.

이처럼 대단위 다원을 통해 대량생산하는 것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에선 일반 소비자가 아무 부담없이 차를 일상적으로 즐기기에는 아직 미흡한 점이 많이 있기에, 대량생산이 이를 보완하는 것은 지극히 좋은 일이다. 다만 이를 악용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문제인 것이다.

말 그대로 서민이 일상생활에서 다반사로 즐기면서 수시로 마시는 차는 그것대로 발전되야 할 의무가 있고, 비록 생산성에서는 느리지만 맛에 있어서 만큼은 최고인, 덖음차가 존립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정성이 담뿍 들어가서 많은 수작업을 거쳐 완성되는 고품질의 차를 생산하는 것도 도왜시 해서는 안될것이다. 경제논리에 파묻혀 전통의 맥이 끊어짐을 경계해야 한다.

한국인의 순탄치 못했던 근현대사를 통해, 우리것에 집착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려는 한 방편이기도 하나, 보편성이 결여된 우리것은 곧 국수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다.

보편성이 없이는 지역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이제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차가 하나쯤은 나와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이 땅에도 훌륭한 차가 있다. 그렇다. 그런데 So, What? 널리 알려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널리 알려 세상을 이롭게 하는것이 당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이 해야 할 일중하나이다.

아는 만큼 이해한다고 했으니, 보편성을 기저에 깔고, 한국차의 특징적인 맛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관건이라 할 것이다. 대량생산의 시대는 저물고 있으나, 아직도 그 위세가 꺽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세기에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간다하니 미래를 준비해야 할것이다.

보편성과 세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