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생 차나무
차는 육우가 다경을 저술하여 중국 차의 역사와 이론을 처음 정립하기 전까지는 북방계통 소수민족의 약으로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중국에서의 차는 4 ~ 5세기까지 양쯔강 하류 산간 계곡지대에서 살던, 소수민족들 사이에서 애호되었던 음료이면서, 동시에 약이었다.

이러한 비주류의 차 문화를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킨 사람이 바로 당나라의 천재 시인 이었던 육우이다. 그는 중국 최초로 차문화를 체계화시킨 시조로서 다경을 저술하였다. 이후 그는 중국의 차 상인들에게 수호신으로 받들어 졌으며, 대종황제(大宗皇帝·763~779)의 비호를 받게 된다.

이처럼 다경은 중국 차의 역사와 이론을 집대성해 놓은 책이다. 따라서 육우의 다경보다 먼저 차문화를 즐겼던 우리나라 차문화와 차인들의 역사를 부정하는 책이 아니며, 다경 어느 구절에도 그런 내용은 들어있지 않다. 오히려 다경을 앞세워 우리나라 차문화의 실체를 부정해버린 것은 당시의 지식인 들이었다.

이와같은 우리 역사의 폄하와 왜곡은, 차나무가 본디 우리 땅에서 나 자라난 것이라는 자생설을 부인하고 있으며, 차씨를 중국에서 들여와 심어 키운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한다.

대렴설의 오류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차나무는 2세기 경부터 우리나라 남쪽지방에서 자라 났다. 경주, 김해, 양산, 고성, 사천, 하동, 해남 등 남해안 지역에는 이미 기원전부터 차그릇이 있었으며, 이는 차나무가 존재했음을 알게 해주는 역사적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대주의에 학자들은 중국처럼 수천년, 수백년된 차나무가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하여 차의 자생설을 부정한다. 오래된 차나무가 없다하여 차의 한국 자생을 부정하는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우매한 견해이다.

현재, 한국의 차나무는 자생종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것이 전체 차 밭의 1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도 절반 정도만이 순수한 자생 차나무이고 나머지는 비료나 농약을 살포하여 자생종 차나무의 우수한 특질을 잃어 버렸다.

자생 차나무는 심은지 8년은 지나야 비로서 그 생잎을 딸 수 있는데, 인간의 탐욕이 이를 좀더 단축시켜 절반 정도로 줄이고, 대량으로 생산하고자 여기에 비료와 농약을 주게 된다. 이처럼 자생종에 한번 비료를 주게되면, 뿌리가 깊이 박히지 못하고, 잔털이 옆으로 많이 퍼져 영양분을 많이 흡수하는 구조로 자라나게 된다.

이것이 변종 차나무로써, 한번 비료맛을 들인 차나무는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비료를 주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끝장이다. 그와 더불어 농약마저 살포해야 하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결국은 경제적인 논리가 그 원인 이었으니, 이처럼 대량생산으로 인해 일반 서민들이 부담없이 차를 즐기게 된 점도 훌륭하다 할 수 있으나, 현저하게 질을 떨어뜨린 측면에서는 결코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전부 일제 강점기에 대량생산을 위해 의도적으로 조성되어진 야부기다 종의 차밭이다. 이 놈으로 만든 차의 문제점이 상당한데, 우리가 흔히 마시는 녹차가 대부분 이 야부기다종을 제다한 것이다.

자생 차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