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루시퍼 이펙트 12 : 무엇이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The Lucifer Effect : Understanding How Good People Turn Evil

필립 짐바르도 Philip George Zimbardo 저 / 이충호, 임지원 공역 / 웅진지식하우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지 부조화
아더 클라크(Arthur Charles Clarke) 원작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 A Space Odyssey, 1968' 라는 작품은,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에 의해서 영화화 되었다. 여기에는 HAL9000 이라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나온다. 할은 목성을 조사하러 가는 미션을 부여받았는데, 그 기간 동안 탑승자들의 생존과 안전을 책임지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할은 오류를 일으켜 승무원들을 우주선 밖으로 밀어내 살해하고 만다. 왜 그랬을까? 목성 탐험은 겉으로 드러난 목표였고 실제의 임무는 다른 것이었다. 그 숨겨진 목적과 탑승자들의 생존 사이에서 논리적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할은 이러한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주비행사들을 죽이게 된다.

영화에서는 이렇게 표현을 한다.

"어린 아이에게 상반되는 미션이 주어졌을 때 어떻게 하겠는가?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은폐하려고 했다."

 

인공지능의 오류는 그것을 창조해 낸 불완전한 인간의 오류다. 이와 같이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 등에 위배되는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엄청난 일을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그 간극이 크면 클 수록 더욱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런 행동을 일컬어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라고 하며,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 밝혀낸 성과 중 하나다. 인지 부조화는 잘못된 시스템을 바꾸려 하기 보다는, 자신의 행동을 그 상황에 맞춰가는 행위를 말한다.

특히나 그 모순된 환경이 공식적인 것이거나, 집단의 동조화 압력이거나, 압제적인 독성 리더에 의해서 강요되거나 할 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신념이나 도덕성을 저버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교도대원과 입감자, 그리고 연구진과 방문자들 모두에게 일어난 현상이다.

한 마디로 말해 인류는 합리화에 능한 존재다. 현실에서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무수히 많이 접한다. 작게는 개인적인 금연에서 크게는 국가의 혁신에 이르기까지. 즉, 담배를 끊기 보다는 흡연하면서 장수한 사람의 예를 열거하면서 계속 담배를 피운다. 부조리한 현실을 개혁하려 하기보다는 '그게 싫으면 이 나라를 떠나라' 라고 폭언을 쏟아낸다.

 

 

 

공포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리하여 여러가지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고 여기에 권위를 부여한다. 이렇게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정당성을 인정받은 권위는, 당대의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관념을 생산해 낸다. 사람들은 이것을 이데올로기라고 칭한다.

이와 같은 관념체계는 우리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수용되어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다. 역사상의 독재정권은 '국가 안보' 라는 명분하에 무력을 동원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민주주의 국가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단지 언론 조작을 통한 교활한 방식으로 진행될 뿐이다.

이처럼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은 국민들을 겁에 질리게 한다. 그리하여 권력자를 위해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을 기꺼히 포기하도록 만든다. 히틀러와 나치 독일이 보여준 광기에는 인종청소라는 이데올로기가 쓰였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매카시즘 광풍이 불어 무고한 시민들이 크나큰 고통을 받았다.

또한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이라크 전쟁을 정당화 하기 위해 '악의 축' 이라는 선전 문구가 등장했다. 공포스런 느낌을 자극하는 '대량살상무기' 라는 단어는 안전에 대한 보상심리를 자극했다. 그리고 작금의 한국 상황을 생각해보라.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국가안보라는 단어는 마법의 카드다. 선거철에는 항상 북풍이 분다. 매카시즘 광풍은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한 번 형성된 에고는 바뀌지 않는다.
지난 100여년 간의 현대사를 잠깐 돌아다보자. 이 기간 동안 우리는 농업기반의 경제에서, 단절과도 같은 과정을 거쳐 산업사회로 도약했다. 이 갑작스런 변화에 비판능력을 기를 시간이 부족했으며,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해 시민의식이 자랄 여지가 미흡했다. 근대 농촌의 정서를 그대로 갖고 와서 현대의 삶에 적용하려니 수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전자는 이웃들과 정으로 소통 했으며 만나는 사람이 소수이기에 그것이 잘 작동했다. 하지만 수많은 인간이 모여 사는 도시경제에서는 적절하지 않기에, 합리를 추구하는 시스템으로 사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좋은게 좋은거다', 쉬쉬하는 관습, 학연, 지연, 종교 등과 같은 패거리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아직 까지도 일제 강점기의 굴욕스런 역사를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36년 간의 식민 지배는 패악이 도처에 스며들게 만들어 제거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다. 유럽이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기간은 겨우 4년여에 불과하다. 때문에 종전 후에는 비교적 쉽게 오염원을 분리해 낼 수 있었다.

그에 비해 한국은 무려 9배나 더 길었기에, 세포 곳곳에 침투하여 분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아니, 실제로 따져보면 100년을 넘는 기간. 세대가 4번이나 바뀌는 시간이다. 1905년 을사늑약을 시작으로 1945년 2차 대전이 끝나기 까지 40년. 이어서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온 나라가 폐허로 변했다.

60년대는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으며, 이후 80년대 까지 군부독재의 폭압이 40여년간 이어졌다. 90년대에 이르러 살림살이가 펴지는 듯 했으나 곧이어 외환위기를 겪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와 잠깐 동안의 봄이 왔다가 현재는 70년대로 퇴보하고 있다.

이렇게 1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친일독재 세력은 권력을 움켜잡아왔다. 우리네 불쌍한 아버지 세대는, 자신들의 한 평생을 이러한 절대권력하에서 신음하면서 보냈다. 그리고는 권력자들의 패덕을 내면화하고 베블런 효과에 매몰되어 저들의 부정부패를 옹호한다. 이들에게 어떻게 공감을 이끌어 낼 것인가?

켜켜이 쌓인 편견과 적대감을 어떻게 벗겨낼 수 있을까? 한 집안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의 생각이, 어머니와 딸의 의견이 다르다. 가족이 이러할진데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때에 따라서는 참기 힘든 분노가 솟구친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들이 바뀔것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교도관 역할에 매몰된 피험자의 예에서 보듯이 --처음에는 평범한 개인이었지만 나중에는 그 권력을 즐기면서 심성마저 바뀌게 되는-- 일생동안 겪어온 압제적인 상황이, 그들의 이성은 물론이요 감정까지 변질시켰기 때문이다.

 


 

 

사유와 감성이 충돌할 때 언제나 승리하는 쪽은 정서적인 부분이다. 단지 5일간의 SPE 실험으로도 극적인 성격변환이 일어났다. 그러니 전 생애에 걸친 경험은 아마도 이들의 DNA까지 전환시켜버렸을터이다. 사람의 에고는 죽음에 가까운 체험 없이는 바뀌지 않는다.

바꿔말해 식민지배와 한국전쟁, 군사독재정권의 패악질에 의해 형성된 자아는, 그 이상의 충격스런 경험이 없이는 변화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러나 저들의 포악함에 질려서 정치에 무관심해진 사람들과 중도층은 설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쨌거나 과거에 비하면 발전해 온 것도 사실이니까 말이다.

양반과 상놈, 평민과 귀족의 시대를 현재와 비교해보면, 비록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 우매함을 걷어내 온 것이 인류의 역사다. 현대 민주주의는 이렇게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권력자들이 보통 사람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유일한 때가 언제인가? 바로 선거다.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의 자식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면 투표하라. 당신이 처한 힘든 삶을 바꾸기 원한다면 투표소로 가라. 당신의 무관심은 행동하지 않은 악이 되어 친일독재극우광신 집단이 번성하는 바탕이 된다.

단 한번에, 단박에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뽑아줄 사람이, 선택할 정당이 없다고 포기하지 마라. 인지부조화로 당신의 무관심을 합리화하지 마라.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최악을 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지겨운 족속들이 절멸한 이후에 최선을 택하면 된다.

2016년 촛불 민심은 지금까지의 부패한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이다. 촛불 집회는 그 의미를 현실에 구현할 수 있는 정치적 형태로 전환되어야, 그 성과를 가감없이 담아낼 수 있다. 지난 4.19 혁명의 뜻을 이번에야 말로 온전히 담아내어보자.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 본성을 더욱 자세히 알게 되었다. 시스템에 따라서는 악마 그 이상이 되기도 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악귀 그 이하로 타락하기도 한다. 이 글을 쓰는 내내 그 상황을 생각하면 자꾸만 감정이 격해진다. 고통스런 현실을 직시해야 하므로 몹시 괴롭다. 그러나 피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미력하나마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독후감을 썼다. 루시퍼 이펙트는 700쪽이 훨씬 넘는 두꺼운 저서다. 우리는 이 책의 서두 부분을 겨우 살펴본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을 낱낱이 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이와 같은 악의적인 시스템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려주고 있다. 또한, SPE 실험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웹싸이트 http://www.prisonexp.org 에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동영상과 사진을 통해서 더욱 자세한 내용을 접할 수 있다.

이 실험의 경험으로 인해 저자는 사회 운동가로 변신하여 의회 청문회에서 활약중이며, 이런 노력에 의해서 새로운 법률이 제정되는 결실을 이룬다. 필자는 이 책 루시퍼 이펙트는 반드시 교과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판단한다. 이미 영국 고등학교에서는 대학 입학 준비 과정에 포함시키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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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년이 지난 후에 SPE 실험이 재현되었다. 이번에는 단 이틀만에 실험이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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