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 이펙트: 무엇이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11
The Lucifer Effect : Understanding How Good People Turn Evil

필립 짐바르도 Philip George Zimbardo 저 / 이충호, 임지원 공역 / 웅진지식하우스

 

과도한 역할 수행이 악귀를 낳는다.
이번에는 현실과 결부시켜서 몇 가지 의미 깊은 분석을 해보자. 홍콩 영화 촉산蜀山(Zu : Warriors From The Magic Mountain, 1983) 에서 맹활약을 보여준 홍금보洪金寶는, 그 유명세를 바탕으로 미국 드라마에 진출하여 멋진 쿵푸 실력을 뽐냈다. 오래 되어서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시나리오의 설정은 이렇다.

그는 자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과도하게 훈육에 집착하여, 그 아들이 아버지를 피해 미국으로 도망치게 만든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홍금보는 아들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고, 거기서 경찰이 되어 악당들을 소탕한다. 엄마찾아 삼만리가 아닌, 아들찾아 구만리다.

현실에서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숱하게 접한다. 부모는 아이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것저것 욕심을 부리다가 자식을 울리고 만다. 이때 부모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자애스런 분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다. 즉,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일정한 선을 넘지 않도록 해준다.

대체로 동양에서는 벼농사가 발달했기에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역할 분담이 가능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서양은 목축이 주된 생산 시스템이며 3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경우는 드물다. 이때 조부모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대부/대모 라는 제도라고 단칼은 생각한다.

그리고 동서양 모두, 이러한 실수를 예방하기 위해서 교육기관을 따로 두었다. 이처럼 부모의 역할과 스승의 입장을 동시에 수행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이 개념을 국가라는 단위로 확장시키면 신문고나 상소 제도와 같이 권력자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서구에서는 이런 시스템 대신에 군주의 옆에 광대를 두었다.

어릿광대는 익살을 통해 왕이 심각한 상황에 함몰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와 같은 제도적 장치는 통치세력에게 또 하나의 잇점을 준다. 짐바르도가 언급했듯이 '민주적인 것과 비슷한 무엇인가' 를 도입하여, 피지배자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SPE 실험에서 연구의 총책임자인 필립 짐바르도가 실수를 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연구와 감독관이라는 이중 역할을 맡은 것이 나의 실수였다. 왜냐하면 그 두 역할은 각기 다른, 때로는 서로 충돌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두 가지 역할을 함께 맡고 있다는 점은 나의 권력을 한층 더 증대해서 우리 교도소를 찾았던 수많은 외부자들이 이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사람이 일단 상황의 손아귀에 붙잡힌 상태에서는 자신의 사고, 느낌, 행동을 변화시키는 상황의 힘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지난 한 주 동안 점점 교도소의 권력자로 변신해갔다. 나는 권력자처럼 걸었고 권력자처럼 말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권력자를 대하듯 나를 대했다."

 


 

빈곤층이 서로를 헐뜯는 이유.
다음으로 수감자들의 환경을 분석해보자. 앞서서, 잘못된 시스템을 혁파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공감을 얻어내야만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기질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무척이나 어렵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든 일이다. 베블런 효과를 떠올리면서 그 이유를 분석해보자. 심리학에서는 아래와 같이 해석한다.

SPE 실험에서 입감자들이 단식 투쟁자를 외면한 이유는 뭘까? 현실에서 빈곤한 계층이 보수적이 되는 까닭은 뭘까? 수감자들은 교도원들의 폭압에 굴복하는 치욕스런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압제자에게 복종하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서, 타인에 대한 경멸을 내면화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존감을 지키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가해자 편에 동승하고 만다. 이러한 행위를 일컬어 심리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은 '공격자와의 동일시(indentification with the aggressor)' 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나치의 포로 수용소에서 일부 수감자가 마치 나치의 간부처럼 행동한 예가 이에 해당한다. 동료를 학대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누군가 버린 SS 제복을 주워 입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절체절명의 환경에서는 살아남는 것만이 지고지순한 목표요, 그 밖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때문에 가해자가 원하는 바를 파악하고, 이에 따라 공격자의 이미지를 추종하고 결국에는 압제자와 같은 존재가 된다. SPE 실험에서 벌어진 것이 바로 이러한 현상이다.

절대 권력을 가진 교도관과 무기력한 입감자 사이의 간극을, 심리적으로 최소화 하려는 방어기제가 발동된 것이다. 즉, 자신의 마음을 독재자와 일치 시키는 속임수를 통해,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회피하고자 하는 심리다. 이와 같은 현실 왜곡은 고통 받는 동료 수감자에게 동정심을 가질 수 없게 만든다.

빈곤층이 서로를 비난하며 헐뜯는 이유다. 학대 받고 자라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가해자가 되는 연유다. 젊디 젊은 처자가 부와 권력을 가진 늙은이와 함께 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좌절한 사람들이 극우보수가 되는 까닭이다. 이와 같이 현실에서 받는 해결 불가능한 극심한 스트레스는 각 개인에게 화병이나 우울증 등으로 발현된다.

이렇게 사회 전체가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그 적개심은 가장 약한 대상에게 향한다. 노인과 여성, 그리고 어린이, 여기에 소수 민족이나 외국인이 더해진다.

 

 

우리는 시스템을 만들지만, 그 이후에는 시스템이 우리를 조종한다.
이 실험에서 교도관들은 점호를 악용하여 입감자들 사이에 혐오스럽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착화 시켰다. 피험자들 사이에 오고간 대화를 분석해 보면, 서로간에 유대감을 갖게 만드는 대화는 거의 없었다. 오로지 형무소와 관련된 주제만이 있었을 뿐이다.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약간이나마 현실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화제가 부재했다.

이와 같이 수감자들이 서로 소통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은 동료가 보여주는 굴욕적인 행동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상호간에 적대적인 말과 파괴적인 행동을 야기하게 된다. 입감자들 뿐만 아니라 교도원들 끼리도 증오심을 갖고 있었다는 고백을 상기하기 바란다.

이들은 동료에 대한 어떠한 사적인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아울러 시간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면서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한밤중에 재소자들을 괴롭히는 점호 때문에 그들은 항상 피곤한 상태였다. 도대체가 긍정적인 무엇인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처럼 끔찍한 현실이 피험자들의 몸과 마음을 묶어버린 상태에서는, 미래의 희망이나 과거의 좋았던 추억을 떠올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저 감방에 갖혀있다는 사실을 파고 또 파면서, 그렇게 가혹하고 모호한 시간이 이어진다. 시간 관념의 왜곡은 수감자들에게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연구진과 교도원들도 긴 근무시간과 부족한 잠으로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SPE 실험에 관계한 모든 사람들의 판단 착오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한편, 이러한 교도소 환경에서 연구진은 유머의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길 '유머는 긴장을 완화시키거나 심지어 비현실적인 상황에 약간이나마 현실성을 불러일으키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라고 적고 있다. 날카로운 포착이지만 놓친 부분이 있다.

이것은 아마도 실험자들에게 군 복무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단칼이 군대에서 제일 먼저 경험한 쇼크는 웃음이 주는 기괴한 측면이다. 신병 때 선임병에게 시달림을 당한 이유중 하나가 바로 미소를 머금은 표정 때문이었다. '너 지금 나를 비웃냐?' 이것이 고참에게서 되돌아온 첫 반응이었다.

당시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격이었다. 아마도 입술 근육과 눈 주위에서 약간이나마 빙그레한 모습이 비춰졌을것이다. 그런데, 내가 병장이 되고 나서 신병에게 똑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역 후 내 반응을 곰곰히 따져 본 결과, 그 표정은 병영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일종의 가면이었다.

이러한 행위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자동반응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어색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절로 헛웃음이 나온다. 물론, 유머는 피험자들에게 그와 같이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형무소 내에서의 웃음은 부정적으로 작용하여, 오히려 가해자의 폭력성을 더하게 만든다. 교도원 일지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는 부분을 떠올려보라.

".....'뭘 보고 웃는 거지? 그가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도관님.' '아무것도 아닌지 어디 두고 보자.' 걸어 나오면서 나 자신이 바보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미소 띈 얼굴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군대나 형무소, 그밖의 폐쇄적이고 특수한 집단(환경)에서는 유머가 상대방을 조롱하는 행위로 탈바꿈한다. 받아들이는 쪽에서 비웃음이라는 왜곡된 해석을 하는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했는가?

그는 인터뷰 기사에서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고 한다. 힘든 선택이라는 회고록에서, 방북 전에 '김정일과 사진 찍을 때 웃거나 찡그리지 말라' 는 오마바 행정부의 브리핑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가스로 죽은 사람들을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 그 일을 맡았던 한 유태인 수감자는 일말의 표정도 짖지 않았다고 말한다. 만약, 이 상황에서 그가 감정을 드러내었더라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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