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 이펙트: 무엇이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9
The Lucifer Effect : Understanding How Good People Turn Evil

필립 짐바르도 Philip George Zimbardo 저 / 이충호, 임지원 공역 / 웅진지식하우스

 

방관하는 자세가 악을 번성케 한다.
스탠퍼드 카운티 교도소는 폐쇄되었다. 독자 여러분과 필자, 그리고 연구 참여자들 모두, 계속 될 것 같은 악몽을 겨우겨우 빠져나왔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치유의 과정이 동반되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기 때문이다. 짐바르도는 이렇게 말한다.

"수감자들의 경우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수행했던 복종적 역할에 깃들어 있는 수치심을 극복하는 일이었다...교도원들에게는 그들이 수행했던 역할의 요구를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준 사실에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좀더 자주 개입하지 못했고 그것이 교도관들의 극단적인 행동을 승인하는 꼴이 된 것에 대해 큰 죄책감을 느낀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실험 참여자들은 모두 모여서, 이 교도소 실험에서 느꼈던 자신의 감정과 반응을 평화로운 환경에서 털어놓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올바르고 적절한 행동인지, 가학적인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토론하고 분석한다.

이 만남에서 수감자 역할을 맡았던 사람과 교도대원 입장에 섰었던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먼저 해방된 수감자들의 심리를 살펴보자. 교도관들에 대한 그들의 평가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악질적인 교도대원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스톡홀름 증후근 --테러리스트에게 인질이 된 사람들이, 나중에는 그 범죄자들을 옹호하게 되는 현상-- 을 떠올리게 하는 심리적 변화가 있다. 바로, 방관자적 태도를 보였던 부류에 --원칙에 충실한 교정직 공무원 이라고 하자-- 대한 피험자들의 호감이다.

입감자들이 말도 안되는 규칙을 지키지 않을 때는, 그들에게 소화기를 분무하는 거친 행동을 했음에도 말이다. 이들은 교도원이라는 역할과는 거리를 두면서 수감자들에게 잔인한 행동을 하는 것을 피했다. 또한, 독재권력의 상징이 되는 제복과 선글라스를 착용하지 않음으로써 피실험자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렸다.

그렇지만 이 원칙주의자 공무원들은, 동료 교도대원의 악질적인 행동에는 어떠한 반대 의견도 내놓지 않았다. 그렇다. 이것은 '행동하지 않은 악' 이다. 소극적인 방관자적 자세는 모든 악의 바탕이 된다. 왜냐하면 그들도 결국에는 다른 교도원의 압력을 받아 점차 가학적으로 바뀌어가기 때문이다.

 


 

한 입감자의 회상을 들어보자.

"좋은 수감자는 스스로를 무력한 상태로 몰아넣지 않으면서 다른 수감자들과 전략적으로 힘을 합칠 방법을 아는 수감자라고 생각한다......투쟁하지 않는 수감자들은 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에게 장애물이 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나쁜 수감자는 그렇게 할 줄 모르고 오직 자기 자신만 아는 사람이다."

또 다른 피험자의 말을 들어보자.

"......자신의 내면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직접적인 환경에서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나 행복을 찾았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무너졌다. 외부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것에 대항하여 단단히 붙들고 있을 만한 것을 내면에 지니지 못했던 것이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도 있다.

"나는 반항하는 것을 포기했다. 왜냐하면 나의 태도나 행동에 의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동료가 떠난 후에 내가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가 없으므로 나 자신이 변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동료 수감자들에게 파업이든 무엇이든 해보자고 설득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첫 번째 시도에서 받았던 벌 때문에 아무것도 하려고 들지 않았다."

스파이로 심어져 교도소에 들어간 사람의 심리변화도 놓칠 수 없다.

"나는 종종 이 멋진 친구들 사이에 밀고자로 심어졌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다.....탈출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나 혼자서 말이다). 그러나 잡힐까 봐 두려워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결과 보고를 위해 그곳(교도소)에 되돌아갔을 때도 나는 여전히 극도의 불안을 느꼈다.....누구에게도 털어놓고 의논할 수 없었다. 심지어 아내에게조차 말이다."

 

 

이번에는 교정직 역할을 맡았던 사람들의 심리를 들여다보자. 연구가 중단되자 대부분의 교도원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아니겠는가? 자신들의 손에 절대 권력이 주어졌으며, 이 막강한 힘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즐거움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그들의 입장을 정당화 했다.

가령, 자신이 행동이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었다고 말이다.
뻔한 변명이다. 그들의 고백을 들어보자.

"그것은 마치 스스로 만들어낸 감옥과 같은 것이었다. 제 발로 그곳에 들어간 다음에는 그것이 마치 단단한 벽과 같이 나 자신을 가두게 된다."

악질 교도관 중 한 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사실상 수감자들을 짐승과 같이 여겼다. 그리고 그들이 뭔가를 도모할 것에 대비하여 항상 감시하고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와 같은 감정이 수감자들을 지배하는 전적인 자유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권위를 남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집에서도 어머니에게 이리저리 큰 소리로 명령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원칙에 충실했던 공무원들은 --그리하여 방관자가 되었던--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나는 잔인한 행동이 벌어지는 것을 방관했고 그저 속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혼자서 수감자들을 친절하게 대했을 뿐이다. 솔직히 나는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대부분의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그리고 그저 교도관 숙소에 앉아서 수감자들에 대해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다."

"신경쇠약에 걸린 모습을 보여줄 때 나의 경험은 단순히 실험을 넘어섰다고 판단되었습니다. 저는 두렵고 걱정이 되어서 실험에 참여하는 것을 그만둘 생각도 했습니다. 또한 수감자 역할을 맡게 해달라고 부탁해볼까도 생각했습니다.....괴롭히는 쪽이 되느니 차라리 괴롭힘을 당하는 쪽이 되기를 바랄 지경이었어요."

"우리는 모두 압제적인 상황에 짓눌려 있다. 그러나 우리 교도관들은 스스로 자유롭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우리는 모두 돈의 노예가 되었다. 수감자들은 곧 우리들의 노예가 되었다."

"교도관이 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진짜 어려운 것은 교도관이 가학적이 되고자 하는 충동에 맞서는 것이지요. 그 충동은 조용한 분노, 적의입니다. 그것을 억누를 수는 있지만 사라지지는 않지요. 그것은 옆으로 새나갑니다. 가학적인 행동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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