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 이펙트: 무엇이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8
The Lucifer Effect : Understanding How Good People Turn Evil

필립 짐바르도 Philip George Zimbardo 저 / 이충호, 임지원 공역 / 웅진지식하우스

 

아웃사이더에 의한 실험 중단.
5일째 되는 날, 짐바르도의 연인이자 동료가 처음으로 교도소를 방문했다. 이 섬세한 성격의 여인은 연구 총책임자의 요청에 의해 피실험자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미는 여기서 크나큰 충격을 받는다. 아마도 그녀의 일생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경험일 것이다. 그이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근무를 시작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교도관 중 한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매우 쾌활하고 정중하며 친절해서 누구든 보면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할 만한 사람이었다......'존 웨인'은 교도대원들 가운데 가장 비열하고 거친 교도관의 별명이었다.......내가 관찰 창문을 통해서 교도소 안을 바라보았을 때 존 웨인이 바로 조금 전에 이야기를 나누었던 '정말 좋은 사람' 이라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금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했다. 행동도, 말도 조금 전과 확연히 달랐다.......엄청나게 무례하고 호전적인 태도로 입감자들에게 '점호'를 시키면서 연신 욕지거리와 저주를 퍼부었다. 이것은 내가 조금 전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이 보여준 놀라운 성격 변환이었다...... 군복과 비슷한 제복을 입고, 곤봉을 손에 들고, 은빛의 반사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 채 이 남자는 사무적이고 빈틈없고 진짜로 비열한 교도관으로 변신했다."

이 교도대원의 행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마치 뭔가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는 듯 하다. 전투에 나서기 전에 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은 --그리하여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는-- 어느 사회에나 있는 탈개인화, 비인간화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행위다. 이 교도원은 제복을 착용함으로써 피아를 구별짖는다.

나와 다른 이들에게 증오감을 키우는 첫 번째 단계다. 그리고 곤봉을 집어드는 행동은 당연히 권력을 상징하며 언제든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어서 선글라스를 낌으로 해서 자신에게 또다른 인격을 부여한다.

 

즉, 가면 아래에 자기를 숨기는 동시에 다른 사람이 그의 생각이나 표정을 가늠할 수 없게 차단한다.
다시 실험으로 돌아가보자. 이와 같은 광경에 충격을 받은 그미는 주루륵 눈물을 쏟아낸다. 너무나 감정이 격해져서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녀는 더 이상 이 상황을 마주할 수 없어 교도소를 뛰쳐 나간다.

짐바르도는 황망히 그이를 쫓아 나간다. 그리고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뻔한 논리로 그미를 다그친다. '그렇게 감정적이 되어서야 어디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있겠느냐' 고 말이다. '지금까지 이 교도소에 수십 명이 다녀갔지만 그녀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고 몰아부친다.

이와 같은 비판에 그미는 격노한다. 그들은 죄수도 아니고 실험 재료도 아니며 단지 이 상황 속에서 도덕의 나침반을 잃어버렸으며, 다른 친구들에 의해 비인간화되고 치욕을 당한 사람일뿐이라고 우리를 일깨운다.
이 상황을 마주한 그녀의 회고를 살펴보자.

"싸늘하고 구역질 나는 기분이 나를 엄습했다. 짐바르도와 그곳의 다른 연구자들은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장광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완전히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있는 이 가엾은 젊은이들의 모습에 이미 메스꺼움을 느끼던 차에 그들의 견해와 놀림은 나 자신을 약하고 멍청하게 느껴지게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의 필립 짐바르도는 자신의 오류를 깨달았다. 비록 그미와의 언쟁을 통해서였지만 말이다. 그녀의 회상을 다시 들여다보자.

"내가 보여 준 것은 엄청난 감정의 폭발이었다. (평소 나는 오히려 침착하고 감정을 억제하는 편이다.) 나는 화가 났고 겁이 났고 눈물이 났다.....필립 짐바르도는 내가 그동안 알아왔던 남자......내가 사랑하게 된 남자, 사람들을 부드럽게 대하고 다른 이들, 그리고 나의 요구에 세심하게 응하던 사람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결국 필립이 내가 한 말을 시인하고 나에게 거칠게 대한 것을 사과했으며 ....마침내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그들의 인도주의적 가치를 가려버리는 파괴적인 교도소의 가치를 내면화했던 것이다. 그리고 실험을 중단한 것을 선언하기로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주지시켜야겠다. 짐바르도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바로 여성성이 주는 설득의 힘이다. 앞서 남성 동료 교수가 찾아왔을 때에는 그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학자 나부랭이가 뭘 알겠느냐'고 했던 것을 떠올려 보라.

반면에 그녀의 여성성은 잘못된 상황을 인식하게 하는데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더했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미의 말을 더 들어보자.

"그렇다면 나는 왜 그렇게 남다른 반응을 보였을까? 답은 두 가지 사실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상황에 나중에 들어갔고, '아웃 사이더' 였다........만약 여러분이 이에 불복하여 실험을 계속하길 거부하고, 돈을 받고 조용히 떠난다면 여러분의 영웅적인 행동은 그 다음 참여자가 같은 고통을 받는 것을 방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아무런 사회적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고립된 사건이 되고 말 것이다. 개인의 불복종은 일부 운영 조건에 변화를 가져오는 데 그치지 않고, 상황이나 조직 자체에 변화를 강요하는 조직적인 불복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잘못된 시스템의 기묘한 생명력.
실험 중단을 결정했을 때, 교도소 내부는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렸다. 교도대원에 의해서 입감자들에게 성적 학대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단식 투쟁자의 초연한 모습에 존 웨인은 이성을 상실하고 광기에 휩쌓였다. 그는 새벽 1시의 점호에 갑자기 끼어들어, 재소자들끼리 서로에게 심한 욕을 퍼붓도록 강요했다.

그리고는 똘마니와 함께 인간의 영혼을 파괴시킬 수도 있는 성적 학대를 고안해냈다.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수감자 학대 사진과 같은 구역질 나는 짓을 강요한것이다. 연구가 시작된 후 고작 닷새 만에 벌어진 상황이다. 짐바르도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일부 교도관은 악의 창조자로, 또 다른 일부 교도관들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 악이 마구 번성하는 것을 방조했다. 한편 다른 정상적이고 건강한 젊은이들 중 일부는 죄수 역할이라는 상황 속에서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남은 생존자들은 좀비와 같은 추종자가 되었다."

 

아뭏든 필립 짐바르도는 연구의 중단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는 즉각 교도소 폐쇄를 실행하지는 않았다. 그대신 수감자들과 교도관, 연구진들을 모두 모아놓고 하나의 번거로운 절차를 진행시켰다. 그것은 바로 모든 입감자들에게 변호사를 접견시키는 일이었다. 관성의 힘이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독재권력을 힘겹게 걷어냈어도 그 시절의 습관이 우리의 정신과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실험자들은 아직도 교도소 실험이라는 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문화적 차이일 수도 있겠으나, 이 과정은 생략했어도 무방하리라는 판단이다.

이 절차를 잠깐 들여다보자. 변호사는 기록을 마치자 수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어 감사하고 말하고 그가 월요일에 공식적으로 사건을 접수하고 보석을 신청하겠다고 말한다. 그가 떠나려고 일어서자 수감자 000번이 갑자기 외친다.

"형, 우리를 두고 이렇게 떠날 수는 없어요! 우리는 또 한 주, 아니 하루 이틀도 더 견딜 수가 없어요. 나는 형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지금 당장 여기에서 빼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변호사이자 한 입감자의 형은, 이 갑작스러운 동생의 감정 폭발에 당황했다. 그는 아주 격식을 차린 태도로 그의 업무 범위와 한계, 그리고 그가 재소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짐바르도의 연구 기록에 따르면 이순간, '모든 수감자들은 완전히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것' 처럼 보인다.

왜 아니겠는가? 실날같은 희망이 사라져버린 지금,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한 개인을 철저히 파괴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행위다.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했다가는 그것을 무자비하게 꺾어버리는 짓.

우리의 권력에 대한 감각은 우리가 누군가의 마음을 얻을 때보다 그의 기를 꺾어버릴 때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 에릭 호퍼, (열정적인 정신상태The passionate state of mind), 1954.

 

뜻하지 않게 SPE 실험에 참여한 이 변호사는, 부지불식간에 교도소라는 환경에 속박되었다. 그리고는 참으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 시간이 흘러 형무소 밖에서라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황, 그 시스템에서는 이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실험자와 피실험자가 그랬듯이 말이다.

하여간에 연구의 총책임자는 그 변호사를 문 밖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말하고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실험은 끝났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유입니다. 오늘 이곳을 떠나도 좋습니다."

석방이 물거품처럼 꺼져 버린 입감자들은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넋이 빠져버린 상태라 아무런 움직임도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짐바르도에 말을 빌리자면 '혼란과 회의, 심지어 의심에 빠져서 이것이 그들의 반등을 떠보기 위한 또 하나의 시험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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