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 이펙트: 무엇이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6
The Lucifer Effect : Understanding How Good People Turn Evil

필립 짐바르도 Philip George Zimbardo 저 / 이충호, 임지원 공역 / 웅진지식하우스

 

권력자에게 탄원이 먹히지 않는 이유.
가석방 심리가 열렸다. 한 입감자가 심사위원들 앞으로 불려나왔다. 지금까지의 교도소 생활을 돌이켜 볼때, 그는 전형적인 모범수다. 침착한 성격에 자제심이 강하고 규칙을 위반한 사례가 없다. 자 여기서, 이 실험에 참가하여 인격이 변해버린 심사위원은 색안경을 쓰고 그를 다룬다.

재소자가 감방 생활을 하게 된 원인을 지적하면서 공격적인 질문을 쏟아낸다. 이 강압적인 태도에 희생자는 있지도 않은 죄를 고백하기에 이른다. '아마도 자신에게 죄가 있을 것'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심리 절차 내내 순종적이고 공손한 태도를 보인다.

심사위원은 그를 다시 감옥으로 돌려 보내고, 다른 동료 모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지껄인다.

"저 친구는 번지르르하니 말은 잘하는군"

입장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자신의 위치에 따라서 시각이 달라진다. 지금 수감자는 헛된 노력을 하고 있다. 권력자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한번 생겨난 편견은 바꿀 수가 없다는 얘기다. 예의 바른 행동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뿐이다.

 

이처럼 악의적으로 꾸며진 환경에 의해서, 심리위원과 교도소 관계자들은 입감자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교도대원의 반응은 더욱 적대적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부정적이다. 한 교도관은 아래와 같이 말한다.

"000번은 지금까지 무가치한 말썽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본보기가 될 만한 자질이라고는 하나 없는 추종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는 고분고분하게 다른 이들의 나쁜 행동을 따라할 뿐입니다. 저는 가석방을 반대합니다."

이와 같이 가석방 심리가 아닌, 재수감의 마땅함을 확인하는 절차가 계속 이어진다. 여기에서 짐바르도와 그 연구진들은 소름끼치는 악을 만들어낸다.

"만일 가석방시켜준다면 그동안 여기서 지내는 것에 대해 받기로 되어 있는 급료를 포기하겠느냐?"

라는 질문이다. 자유가 너무나도 간절했던 입감자들은 모두가

"그렇다"

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진정한 악은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 심사위원이 필자를 멍하게 만드는 가장 섬뜩한 악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질문을 이렇게 바꿨다.

"이곳에서 나가게 해준다면 얼마의 돈을 내놓을 수 있느냐?"

 


 

사실 이 심사위원은 그 자신이 한 때 형무소에 복역한 적이 있는 인물이다. 이처럼 자신이 겪었던 힘든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감자들에게 동정심을 보이는 대신 무자비함을 더했다. 여기서 우리는 엄청나게 중차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이 심사위원은 자기도 모르게 권력만이 지고지순의 목표라는 것을 체득하게 된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피해자가 자신과 같은 약자를 동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폭압적인 사람으로 변화하고 말았다. 이처럼 약자에 대한 혐오감을 내면화함으로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손에 넣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그를 지배하게 된다. 그렇다. SPE 실험은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축소판이다.

과거 민주화 운동을 통해 독재권력을 몰아내는데 일조했던 사람이, 극우보수로 변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분이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 처지가 바뀌면 생각도 바뀐다. 관점이 바뀌면 행동도 바뀐다.

 

이렇게 하여 모든 가석방 탄원이 수포로 돌아갔다. 각자의 가석방 심리가 끝나면, 입감자들은 자동적으로 두 팔을 앞으로 내밀어 교도원이 수갑을 채우도록 한다. 돈은 자유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라고 말하고 나서, 모든 탄원자들이 수세적으로 시스템에 굴복했다.

그리고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머리에 봉지를 씌우고 순순히 교도관을 따라서 다시 끔찍한 지하 교도소로 향했다. 이처럼 몸이 구속되면 정신까지 속박된다. 여기에서 독자 여러분을 또 한번 충격에 빠뜨리는 사실을 일깨워보자.

이 가석방 심리에서 그 어떤 피험자들도 '나는 더이상 돈을 원하지 않으니 지금 당장 실험을 중단하라' 고 말한 이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피실험자들은 모두 재소자라는 아이덴티티에 함몰되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관찰자들도 예외없이 이 상황에 매몰되어 이성적인 분석이 불가능했다.

 

 

시스템이 괴물을 만든다.
시선을 돌려서 이번에는 교도관의 심리변화를 추적해 보자. 한 교도대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 자신이 그들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수감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우리는 압제적인 상황에 짓눌리고 있었지만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환상 속에 살았다. 그때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우리는 모두 돈의 노예가 되어갔다. 수감자들은 곧 우리의 노예가 되었다.....나중에 우리 모두가 환경 속의 무언가의 노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만 둘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만두지 않았다."
또 다른 교도대원은 아래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수감자들을 괴롭히는 것을 즐겼다. 000번 처럼 양처럼 고분고분한 것이 몹시 거슬렸다. 나는 그에게 내 부츠를 윤이 나게 닦으라고 일곱 번이나 시켰지만 그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증세는 더욱 심해진다.

"....수감자들은 아주 고분고분해졌다. 나는 그들이 처한 조건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이따금씩 수감자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나는 단순히 그들을 '죄수'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인간성' 을 망각하는 것이다.....나는 종종 피로와 혐오감을 느꼈다.......내가 하는 일을 좀더 쉽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일부러 인간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처음 실험을 시작할 때는 적절한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험이 진행되면서 스스로 저 자신에게 부과했던 감정에 완전히 압도되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진짜로 제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후회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회 권력자들의 행동양식을 민감하게 지켜보았고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의 일부를 이용해서 수감자들의 소외를 심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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