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 이펙트: 무엇이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5
The Lucifer Effect : Understanding How Good People Turn Evil

필립 짐바르도 Philip George Zimbardo 저 / 이충호, 임지원 공역 / 웅진지식하우스

 

빈곤층이 보수화 되는 베블런 효과.
점점 가학적이 되어가는 절대권력 앞에서, 수감자 각 개인은 서로 다르게 반응한다. 가령 어떤 부류는 체제에 굴종하여 자신이 정말 나쁜 죄인이며, 이러한 처벌을 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은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외부와의 소통을 끊고 내부 깊숙히 침잠해 들어간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 단식투쟁에 돌입한 사람도 있다. 이와 같이 서로 각기 다르게 반응하지만, 큰 틀에서는 한가지 공통점을 가진다. 즉,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기심의 발로다. 연대를 통해 폭압적인 시스템을 개혁하려는 노력은 생각치도 못한다.

그보다는 교도소측의 부당한 대우와 가혹한 규칙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 전부다. 그렇다. 개혁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항아리 안의 물을 퍼내고 새로운 물을 채울 수는 있다. 이것을 개선이라고 한다. 조금 맑아지거나 탁한 것이 희석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독 자체를 깨부시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개혁이다. 그런데 혁파는 사람들의 생존 본능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이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절박함이 없는한 바뀌지 않는다. 저소득층이 진보를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놈의 얼어죽을 개혁이냐고 강변한다.

이렇게 자신들의 삶을 더 좋게 만들고자 하는 시스템을 거부한다. 바꿔 말한다면, 사회가 양극화 될 수록 진보가 설 땅은 좁아진다는 애기다. 빈부격차가 커질 수록 궁민들은 보수화된다. 그러므로 진보를 해야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한다. 그런데 이 땅의 민주화 세력들은 뭘 하고 있는가?

쥐꼬리만한 권력을 잡기 위해 민생을 돌 볼 생각을 하지 않으니 선거에서 참패하는 것이 당연하다.
단칼이 지금보다 덜 여물어졌을 때는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수십 년 동안 부패한 친일독재극우 세력에게 그렇게 당해왔으면서도, 선거에서 항상 그 가해자들을 뽑아주는 몽매함.

 

일찌기 경제학자 도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 은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왜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적이 되는가를 규명해 냈다. 이른바 베블런 효과다. 여기서 유한有閑 계급이란 더 이상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지배계급을 뜻한다.

돈과 권력이 주는 막강한 혜택을 향유하고 있으므로 이런 세상이 계속 되기를 바란다. 바꿔 말해,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보수적인 성향이 고착화 된다. 그렇다면 고달픈 노동으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득 하위 계층은 어떨까? 이들이야말로 잘못된 시스템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이 강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오히려 그들이 극우보수주의자로 변신한다. 기존 체제내에서 살아남는데 모든 에너지를 소진함으로써, 그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층이 되어버린다.

 

 

시스템을 바꾸는 시작은 중산층의 절망이다.
다시 실험으로 돌아가보자. 폭압적인 교도관에 맞서서 단식 투쟁에 돌입한 수감자가 나왔다. 이 행위는 교도소측이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불복종 운동이 다른 재소자들에게 연대의식을 고취켜서. 혁명이 발생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도전은 허무한 실패로 끝났다.

방금 전에 언급한 연대의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즉, 이 저항의 중요성을 동료들에게 이해시키고 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아니다. 정정하겠다. 실책이 아니라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이와 같이 독재권력이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시스템에서는, 집단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사고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단식투쟁을 무력화하기 위해서 교도원들은 그를 단순한 골칫덩어리, 문제아 이자 사회부적응자로 규정지었다. 이 규칙 위반자로 인해서 모든 수감자들의 면회가 박탈될 것임을 물론이요, 그 밖의 여러가지 가혹한 처벌이 행해졌다. 참으로 사악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입감자들의 분열을 획책하면서 서로를 감시하게 만드는 간악한 술책이다.

정작 이런 상황은 교도소측이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처럼 연대하지 못한 단식 투쟁은 피험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중차대한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보통 우리는 한 인물의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그의 행위가 우리에게 어떤 비용이나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만들면, 더이상 그것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잘못된 시스템을 혁파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공감을 얻어내야만 한다. 모든 사람들이 더 나은 환경을 위해서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되고, 그러한 기반 위에서만 영웅이 탄생할 수 있다.

 


 

자, 비록 한 개인의 단식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이런 행위는 적어도 한 사람의 재소자에게는 깊은 영향을 끼쳤다. 이 암울한 상황에서 희망의 씨앗을 뿌렸던 것이다. 한 입감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000번의 금욕적인 결심에 감동받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무엇이든 기꺼이 견뎌내려는 사람을 보았다. 그는 곤경에 처하더라도 굴복하거나, 빌거나, 무너지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면 이 영웅적인 행동을 한 수감자의 내면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실험이 끝난 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계속해서 명상을 했습니다. 나 자신의 내면에 집중했습니다. 그러자 아무도 나를 방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구멍(독방) 속에서 종교적 체험을 했던 것입니다. 그 위압적인 교도관 앞에서 먹는 것을 거부하고 난 후 저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그자를 화나게 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날 밤 구멍 속에 처박혔을 때 사실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의 자원을 고갈시켰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지요. 저는 또한 독방 안에서 저의 프라이버시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어요."

 

때로는 이와 같은 한 개인의 이기적인 행위가,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어떤 이를 존경심에 빠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은 혼자만의 착각에 불과하다. 짐바르도는 실험이 중단 된 이후에 그에게 '단식투쟁이 다른 수감자들에게 가져다준 고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아래와 같이 고백했다.

"만일 내가 그곳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하는데, 교도관들이 그것을 이유로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상황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을 것입니다."

본받을만한 사람이라고 여겨졌던 사람의 내면에서, 조금도 영웅적인 동기를 발견할 수 없다. 하기사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보존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타인을 돌본다는 생각은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같이 인간은 참으로 나약하면서도 복잡한 존재다.

우리가 진정으로 한 대상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이다. 그 인물의 한 단면만을 볼 수 밖에 없다. 단식 투쟁하는 동료를 영웅시했던 그의 고백과 뒤이은 행동, 그리고 후회를 들어보자.

"실험이 진행될수록 '이건 단지 게임일 뿐이야....그들은 나의 마음을 어지럽힐 수 없어.....그러니까 나는 나에게 닥친 행동을 그냥 해나갈 뿐이야' 라는 생각으로 나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나는 고립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이었다......

나는 무심한 태도로 잘 지내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준 적이 많았다. 다른 이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대신 그들 역시 나와 같이 무심하리라 가정하고 그 가정으로 나의 이기적인 행동을 합리화했다."

솔직한 고백이 이어진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했던 친구(단식 투쟁자)에게 끔찍한 고통을 준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는 단지 그들의 지시에 따라 행동할 뿐이지만 그들이 나의 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어.' 라고 말하는 것이다.....내 행동의 결과를 직시하려고 하지 않았고 무의식적으로 나의 책임을 교도관들에게 전가시켰다.

나는 나의 마음을 나의 행동으로부터 분리시켰다. 내가 책임을 교도관에게 돌릴 수 있는 한, 다른 수감자들에게 신체적으로 해를 주는 일이라도 했을 것이다."

 


이전 루시퍼 이펙트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