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Bad Samaritans 1

The Myth of Free Trade and the Secret History of Capitalism
장하준Ha-Joon Chang 지음 / 이순희 옮김 / 부키

 

 

어떤 문화가 경제 발전에 유리한지 아닌지를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문화는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변화한다. 문화는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이다. 어떤 나라가 긍정적인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발전해 가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특성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설명이다.

 

신자유주의란?
저자는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야말로 쾌도난마다. 그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자, 그러면 도대체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해보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것을 속속들이 알아야 할 테니까 말이다.

18세기와 19세기의 --애덤 스미스Adam Smith 와 그의 추종자들이 주장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규제가 없는 시장에서의 무한한 경쟁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최대의 능률을 발휘할 수 있는 토양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개입은 경쟁자의 진입을 제한하므로 해로운 것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여 1960년대에 새롭게 출현한 조류가 바로 신자유주의 학파이며,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확고부동한 지위를 차지한다. 이 논조의 핵심은 규제 철폐와 민영화, 그리고 국제 무역과 투자에 대한 개방으로 대표된다.

이와 같은 논리로 무장한 미국이 주도하는 부자나라는 사악한 삼총사인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 세계무역기구WTO를 활용한다. 즉, 차관을 얻으려는 개발도상국에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하도록 압박하며, 선진국이 우위를 점하는 분야에서 자유 무역의 원칙을 요구한다.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모범생이 아니다
이때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선전에 활용하는 모범생이 있으니 바로 한국이다. 그들은 1960 ~ 1980년대에 이르는 한강의 기적을 예로 들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고 있다. 그러나 장하준에 의하면 코리아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이 기간 동안 한국 정부는 민간 부문과의 협의 아래 --단칼이 보기에는 서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이었다-- 특정한 산업을 선택하고 보호 관세나 보조금등의 혜택을 주었다. 기업들은 이러한 여러가지 정부지원을 통해서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게다가 모든 은행이 정부 소유였으므로 자금의 대출까지 관리할 수 있었다.

일부 대형 사업은 국영 기업에 의해 직접 추진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포항제철POSCO 이다. 뿐만 아니라 부족한 외환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통제권을 행사했다. 한국 정부는 어렵게 벌어들인 외화가 중요한 기계설비류와 산업 원자재를 수입하는 데 쓰이도록 했다.

또한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도 제한을 두었다. 즉, 특정한 부문에 대해서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가 하면, 다는 분야에서는 투자를 금지하는 식이었다. 이밖에도 '역설계reverse engineering' 를 격려하고, 특허 상품의 '위조품 제조' 를 눈감아 주는 등의 느슨한 태도를 견지했다.

이와 같이 한국의 기적은 시장 인센티브와 국가 관리의 교묘하고도 실용적인 조합이 빚어낸 결과이다. 자, 이렇게 되면 분명히 떠오르는 나라가 있을 것이다. 차이나다. 우리가 한 세대 전에 이루어낸 결과를 지금 중국이 그들의 관점으로 모방/해석하여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이를 조금 더 먼 과거로 돌려보내면 미국/일본/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등이 이루어낸 경제력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낸 것임을 유추해낼 수 있다.

 

 

 
발전 초기에는 보호무역이 필요
여기서 잠깐 미국과 일본을 들여다보자. 아메리카는 19세기 내내 가장 강력한 보호무역 국가였음에도 매우 빠르게 성장했다. 북미가 자유무역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기 시작한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핵심사업에 관해서는 연구개발 지원과 같은 여타의 수단을 계속 활용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체 연구개발 비용에서 연방 정부의 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50% ~ 70% 였다(이러한 수치는 과거 한국과 일본의 경우 겨우 20% 남짓에 불과했음). 이와 같은 정부지원에 힘입어 미국은 컴퓨터/반도체/생명과학/인터넷/항공우주과학 등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2차 대전 패망후의 일본은 외환을 관리하여 수입/수출을 엄격히 관리했으며 '여신 규제 프로그램' 을 통해서는 낮은 금리로 기업의 자금난을 덜어 주었다. 또한 대부분의 핵심사업에 대해서는 외국인 투자를 금지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정부의 바람막이를 통해서 그들은 다시 한번 일어날 수 있었다.

서구 선진국들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성장해왔다. 부자국가는 가난한 나라들이 경쟁상대로 성장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때문에 자유시장과 자유무역 정책을 통해서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사다리 걷어차기' 이다-- 개도국의 성장을 막고 있는 것이다.

최근 중국과 인도의 성공 사례에서 보듯이 --무조건적이 아닌-- 민족주의적 입장에 기반하여 전략적으로 세계경제에 통합되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로 1990년대까지 차이나의 평균 관세율은 30%가 넘을 정도였다.

 

 
신자유주의 경제학, 너는 유죄
아이러니하게도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정책 실패는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두드러진다. 이들 나라는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이 아시아보다도 더 철저하게 실행된 곳이다. 1970년대 까지 남미의 1인당 국민소득은 연간 3.1% 증가하여 개발도상국들의 평균 성장률을 약간 앞섰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와 신자유주의를 채택한 이후로는 경기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1990년대 남미의 1인당 국민소득 성장률은 1.7%에 불과하며 아프리카의 경우는 더욱 심각해서 연간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성장은 커녕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아프리카 경제는 IMF와 세계은행에 의해 운영된 만큼, 이러한 기록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유죄를 증명하는 판결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나라에서는 소득 불평등이 증대한 반면, 성장은 크게 둔화되었다. 게다가 신흥시장의 금융 위기 발생은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왜 그럴까? 몸집의 차이 때문이다. 가령 아시아의 주식시장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하는 인도라할지라도 미국과 비교해서는 30분의 1이 채 되지 않는다.

참고로 파생상품 판돈 세계 1위는 한국이다. 현물 주식시장보다 몇 십배나 큰 자금이 움직이므로 선물/옵션/ELW 동시 만기일에는 대박/쪽박의 기사가 뉴스를 장식한다. 얼마전에 발생한 도이치증권의 옵션쇼크를 떠올려보라. 일개 헤지펀드 하나가 시장을 좌지우지한다.

탁월한 경제 사학자 두 명의 연구에 따르면 --세계 금융의 개방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1945년에서 1971년 동안 개발도상국은 단 한 차례의 금융위기도 겪지 않았으며 통화 위기는 16번을 겪였다고 한다. 그러나 1973 ~ 1997년 사이에는 17번의 금융 위기와 57번의 통화 위기가 나타났다.

그리고, '쌍둥이 위기(금융 위기 + 통화 위기)' 는 21번 발생했다. 그런데 이 수치는 1988년 이후의 브라질/러시아/아르헨티나 등에서 나타난 대규모 금융 위기는 포함되지도 않은 숫자이다.

 

 
규제는 투자의 걸림돌이 아님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경없는 세상에서 기업의 국적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너무나 지나친 과장이다. 제아무리 초국적 기업이라 할지라도 핵심기술은 자국내에 머무른다. 게다가 이들 모두가 선진국에 배치되어 있다.

또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의하면 다국적 기업들은 이국인 투자를 규제하는 나라를 기피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 장하준은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그렇다면 어찌해서 --개도국들로 하여금-- 외국인 투자를 규제하는 능력을 제한하는 협정에 서명하게 강권하는가? 신자유주의 정통파는 시장 논리를 따르는 것을 좋아하니까,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지는 당사자들에게 맡겨 두면 되지 않겠는가?"

이들 정똥파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투자 결정에 있어서 규제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국 같은 나라는 외국인 투자를 받지 못해야만 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차이나는 크고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과 풍부한 노동력, 도로나 항만 등의 우수한 사회간접자본SOC을 제공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자본의 직접투자율이 무려 10%를 넘고 있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이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첫째가 투자 유치국의 시장 잠재력이고, 다음으로는 노동력과 SOC의 우수성 같은 사항들이다. 이들은 규제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여기서 1부를 마무리하고 잠시 쉬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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