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23 THING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 / 장하준 저/ 김희정, 안세민 공역 / 부키

 

 

시장은 객관적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신자유주의는 낮은 인플레이션, 자유로운 자본 이동, 그리고 --노동 시장 유연성이라는 미사여구로 표현되는-- 높은 고용 불안정성 등을 권장한다. 그런데 이는 금융 자산 보유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정책이다. 인플레를 억제해야만 실질 수익이 보장 되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 자본은 물적, 인적인 자산보다 더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으며 더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점을 극대화 하려는 목적으로 자유로운 돈의 이동을 강조하는 것이다. 노동시장을 쥐어 짜는 원인도 마찬가지다. 기업 구조 조정을 쉽게 하여 당장에 보기 좋은 재무상태표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렇게 한 연후에는 회사를 통째로 사고 팔아서 초과 이익을 만들어낸다. 앞에서 언급한 연구에서 두 교수는, 금융위기를 겪는 나라의 비율과 자유로운 자본의 이동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장하준의 말처럼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FTA와 일련의 정책을 통해-- 무제한의 자본시장 개방을 교역국에 강요하고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자본이동이야말로 신자유주의자들이 중요한 목표로 삼는 일이다. 그들은 자본 이용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일상적인 해고를 통해-- 서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한다. 1980년대 부터 지속되는 선진국들의 높은 실업률은 입풀려를 잡기 위해 긴축정책을 추진한 결과였다.

1990년대에서 금융 위기가 터진 2008년 사이, 실업률을 줄어들었지만 비자발적인 고용 종료 위험과 비정규직의 단기 고용 비율은 몹시 높아졌다.

 

또하나 현대 자본주의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탈산업화 시대' 라는 것이다. 이 용어 속에는 은연중에 제조업이 덜 중요해졌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런데 이것은 대단한 오산이요 엄청난 판단 미스다. 총생산에서 제조업(광공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 든 것은 대부분 상품들의 가격이 서비스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생산량의 절대량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이렇게 제품의 가격이 하락한 것은 '2차 산업 분야의 생산성 > 서비스업' 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두 부문의 속도 차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이 곧 탈산업화라는 착오를 불러일으킨다. 이 자체로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지만 경제 전반에 걸쳐서는 국제수지 부분에서 나쁜 영향을 가져오게 된다.

개발도상국들이 산업화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탈산업화 시대로 진입할 수 있다는 생각은 허상이다. 왜냐하면 3차 산업은 생산성이 증가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기 어렵다. 또한, 서비스 상품은 교역하기도 힘들어서 수출 능력이 떨어지며 그로인해 무역수지 불균형이 일어난다.

바꿔말해, 선진국에서 신 기술을 사들일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므로 경제성장의 속도도 느려진다. 현재 우리는 어느 면에 한해서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2차 산업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소리는 터무니 없는 주장이다. 탈산업화의 원인 중 80%는 대체로 국민경제가 부유해지면서 '재화의 수요 < 서비스 수요'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하락률은 매우 미미하다. 사람들은 소득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서비스 상품 구입에 사용하는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그 이유는 제조업 물품의 양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3차 상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더 비싸지므로 유발되는 착각에 불과하다. 생각해보라.

10년 전에 컴퓨터 한 대를 살 수 있었던 돈이면, 오늘날 네 대까지는 몰라도 세 대는 거뜬히 구입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발 횟수는 어떤가?. 강산이 한 번 바뀌는 동안에도 변화가 없었는데, 미용실 가는 비용은 상당히 많이 올랐다. 즉, 머리카락 깍는 요금은 상승했지만 PC 구입에 쓰는 돈은 줄어들었다.

이와 같은 까닭으로 부자 나라들의 국민총생산에서 제조업 비중이 줄어든 요인은,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서 작아진 것도 아니고 개발도상국 제품의 수입이 늘어나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다. 저렴한 수입제품으로 타격을 받은 것은 몇몇 부문에 국한되어 있다. 결국 탈산업화는 급격한 생산성 향상에 따른 제품의 가격하락으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한 가지 더 나온다. 생산성 증가가 항상 좋은 일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의 '제조업 >서비스업' 이라고 하더라도, 타국과 비교해 볼 때는 뒤쳐져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국가의 2차 산업은 국제적인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터이고, 결과적으로 궁민 생활수준의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다시 말해, 경제성장과는 무관하게 탈산업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대로 자기나라의 매뉴팩쳐링 수준이 국제적으로 봤을 때도 월등하다고 해보자. 이 경우에도 결코 안심할 수는 없다. 왜나하면 3차 산업과의 상대적인 비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때 만약 재화(제조업)의 비중이 용역(서비스업)에 비해서 매우 적다면 생산성 향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서 언급했듯이 서비스 부문은 수출이 어렵기 때문에 외화를 벌어들이기가 녹녹치 않다. 바꿔 말한다면,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 가 같은 공간에 있어야만 사고 파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금융이나 컨설팅, 엔지니어링 같은 지식 기반 서비스는 교역이 훨씬 쉽다. 가령, 영국은 1990년대 이래 이런 서비스의 수출을 통해서 탈산업화에 따른 국제수지 적자를 겨우겨우 메웠다. 그러나 이러한 부문에서 얻는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국내총생산의 4%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미국과 같은 경우에는 채 1%도 되지 않는다.

 

이어지는 챕터에서 그는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 경제의 예를 들어가며 FTA와 금융자본 주도의 경제발전이 어떻게 국가경제를 파산으로 몰고갔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직접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최근 처한 상황과 맞물려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마지막으로 그의 충고를 몇가지 소개하면서 마친다.

 

★ 자유 시장 정책은 제대로 작동한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부자 나라들은 자신이 개발도상국이었을 때에는 그런 정책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지난 30년 동안 이 정책을 도입한 개발도상국들은 성장률 둔화와 수입 불균형 등의 부작용을 떠안아야 했다.

자유 무역, 자유 시장 정책을 사용해서 부자가 된 나라는 과거에도 거의 없었고, 앞으로도 거의 없을 것이다.

★ 기업이 하는 활동 중 가장 단순하기 때문에 해외로 이전하기 제일 좋은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생산 부문마저 대부분의 초국적 기업들은 아직도 본국에 확고한 생산 기반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 기반을 둔 초국적 기업들 중 제조 업체들의 해외 생산량은 전체의 3분의 1을 넘지 못한다.

또한, 일본 기업들의 해외 생산량 비율은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진정으로 초국적인 기업은 거의 없다. 국경 없는 세계라는 표현은 엄청나게 과장된 표현이다.

보통 어떤 기업이 초국적 기업이 되어 외국에 지부를 내는 것은 그 기업에게 있는 기술적, 조직적 역량을 새로 발을 들이는 나라의 기존 기업들이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경영자, 엔지니어, 숙련 노동자 등) 인적 자원, (회사 내부 규정, 업무 관행, 기업 조직 속에 녹아들어 있는 지식 등) 조직적 자원, (조달 업체, 금융 업체, 동종 기업 연맹, 심지어 타 기업 경영진들과의 인맥 등) 관련 기업들과의 비즈니스 네트워크 같은 역량들을 말하는데, 이 중 어느 하나도 다른 나라로 쉽게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현대 금융 시장의 문제는 그것이 너무 효율적이라는 데에 있다. 최근의 금융 '혁신' 을 통해 만들어진 수없이 많은 새 금융 상품들 덕에 금융 부문은 금융 자산 보유자들을 위한 단기 이윤 창출에는 더 효율적이 되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에도 보았듯이 이 새로운 금융 자산들은 금융 시스템 뿐 아니라 경제 전반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말았다.

게다가 금융 자산의 유동성을 이용해 자산 보유자들은 작은 변화에도 빨리 반응을 하기 때문에 실물 경제 부문의 기업들은 장기적 발전에 필요한 '기다려 줄 줄 아는' 자본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금융 부문과 실물 부분 사이에 존재하는 속도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즉 금융 시장의 효율성을 의도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 일부러 제한적인 규칙을 만들어 우리의 선택을 의도적으로 한정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의 환경을 단순화시키지 않는 한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으로는 세상의 복잡성에 대처해 나갈 수 없다.

우리에게 규제가 필요한 이유는, 정부가 당사자인 경제 주체들보다 관련 상황을 반드시 더 잘 알기 때문이 아니다. 규제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제한된 정신적 능력에 대한 겸허한 인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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