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값의 변화와 기억의 변질
 

 

최후의 2%가 기억을 바꿔놓는다.
기준값의 변경, 이것은 삶에 있어서나 투자에 있어서나 매우 중요한 문제다. 테러리스트에게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고분고분 협조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왜 그럴까?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당신이 내 규칙을 잘 따르기만 하면 살해하지는 않겠다" 라고 하면 된다.

탈출구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실날 같은 빛줄기를 전해주면 사람들의 행동이 바뀐다. 기준값의 변화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그렇게 정확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지나간 기억을 변형시켜 버린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찬물 뜨거운 물 실험을 통해서 사람들의 심리적 편향을 다음과 같이 입증했다.

연구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한쪽 손을 얼음물에 3분간 담그게 만들었다. 그리고 피실험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약간의 더운 물을 1분 동안 주입했다. 즉, 모두해서 4분간 차가운 물에 손을 넣은 것이다. 다음에는 따뜻한 물의 유입 없이 바로 3분 뒤에 손을 빼게 했다.

이 실험이 끝난 뒤, 참가자들에게 어느 쪽 실험을 다시 할 것인지 물었다. 무려 70퍼센트가 전자를 골랐다. 이렇게 피실험자들이 1분이나 더 통증이 지속되는 체험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최대의 고통과 마지막 괴로움의 수준이 핵심이다. 즉, 고통을 기억하는 것과 경험하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아픔이 최고일 때를 떠올렸고, 괴로움이 끝나는 순간의 느낌을 저장했다. 그러나 고통의 길이는 기억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오래된 과거일 수록 덜 아픈 것으로 회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망각의 동물, 시간이 지나면 힘들었던 기억도 추억이 되고 만다.

이런 이유로 내시경 검사를 할 때는 최후의 순간을 부드럽게 마무리해야, 대상자들이 당신을 솜씨 좋은 의사로 기억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런 논문의 결과를 의료행위에 적용하여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단칼이 입원했던 어느 날, 초짜 인턴이 윤활유도 바르지 않고 내 똥꼬에 내시경을 삽입하려했던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어흠! 아뭏든, 여기에는 대표성 이라는 심리적 편견도 같이 수반되는데 그건 다음 글에서 알아보자. 이러한 기억의 변질을 투자의 사례에 대입해보자. 만약, 당신이 올해 가장 뜨거웠던 섹터의 주식을 주당 2만5천원에 매입했다고 해보자. 그런데 운도 지지리 없지 주식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때 두 가지 방식으로 하락한다고 해보자.

예컨대, 연중 내내 서서히 하락하여 연말에 1만7천원이 되는 경우. 그 다음은 거의 일년 동안 2만원 대를 유지하다가 끝에 가서 갑자기 1만9천원으로 속락하는 경우. 어떨 때 더 쎈 고통을 느낄까? 당연히 후자다. 하락폭은 전자가 더 크지만 우리는 가장 최근에 입은 손실에 더 큰 괴로움을 느낀다.

뒤집어 생각하면, 사람들은 최대의 만족과 더불어 최후의 즐거움에 더욱 흡족해 한다.

 

 

 

마지막 서푼이 손익을 결정짓는다.
지금까지의 글을 통해서 하나의 사건에는 여러가지 편견이 개입되어 투자를 실패하도록 이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 그러면 기준값의 변경에는 어떻게 심리적인 해석을 할 수 있을까? 씽킹! 띵킹! 퍼 주는 숟가락만 보지 말고 생각을 하라는 얘기다. 곰곰히 따져보고 반추해보면, 초심자들이 최후의 순간에 투매에 나서는 원인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강세장은 흐느끼며 서서히 내리다가 마지막 순간에 걷잡을 수 없이 내리 꽂는다. 단칼이 자산관리 파트에서 송장비율을 들어 설명한 글이 있다. 조정장이 시작되면 거의 모든 시장 참여자들의 계좌가 마이너스로 돌아선다. 주가는 출렁이면서 조금씩 조금씩 내려간다. 몹시 기분이 나쁘지만 그럭저럭 버틴다. 그 비율이 대략 -30%다.

전체 하락 날짜가 100일 이라고 한다면 약 80일 정도가 소요되는 기간이다. 그리고 약세장의 끝무렵, 단지 5일만에 무시무시한 폭락의 순간이 닥치며 순식간에 자산이 반토막 이하로 떨어진다. 여기서 대부부분의 아마추어들이 고꾸라진다. 요즘 젊은이들의 유행어로 표현하자면 멘붕의 순간이다.

 

2008년의 서브프라임 위기가 이렇게 전개되었다. 더 오래된 과거에는 1998년의 IMF가 같은 코스를 따랐다. 전 세계 모든 시장의 붕괴는 이 수순을 따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청년들은 그 엄혹한 때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역사는 계속해서 반복된다. 세대가 바뀔지언정 구성원인 인간은 변함이 없으니까.

그러면, 그 오랜 하락 기간 동안에 사람들은 왜 매도하지 못했을까? 지금까지 설명한 여러가지 인간적인 약점과 더불어 기준값의 변경, 준거점의 변화 때문이다. 장중에 주욱 하락하면서 변동성을 키우다가 막판에는 살짝 올라온다. 가령, 최저점이 15% 정도 하락했다면 마감가는 12%로 끝난다.

마이너스 15 퍼센트의 고통이 경감되어 12% 퍼센트로 조금이나마 줄어들었기에 손실의 괴로움을 수용하는 것이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뜨거운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죽어간다.

 

참고 논문.
# D. Kahneman, B. Fredrickson, C. Schreiber, and D. Redelmeier "What more Pain Is Preferred to Less: Adding a Better End" 1993.
# Daniel Kahneman, Peter Wakker, and Rakesh Sarin "Back to Bentham? Explorations of Exerienced Utility" 1997.
# Daniel Read and George Lowenstein, "Enduring Pain for Money: Decision Based on the Perception and Memory of Pain"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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