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차에 대한 기록 : 삼국사기 대렴설은 틀렸다.
차에 대한 한국의 역사기록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 아래처첨 서술되어 있다.

최초로 차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신라 27대 선덕왕(632∼647)때이며 처음으로 차종자가 뿌려진 것은 "신라 42대 흥덕왕 3년(828년)에 왕명으로 대렴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종자를 지리산 부근에 심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차에 대한 한국 최초의 기록은 아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사대주의의 시각에서 기술되었기에 현재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의 역사는 이런 얼토당토 않은 사대주의와 근현대사를 어우르는 순탄치 않았던 역사의 질곡으로 많은 단절과 왜곡이 있어왔다.

경제력에 대한 인간의 동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현재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 동경의 대상 이라면, 과거에는 중국 문명에 대한 동경이 사대주의란 형식으로 발현 되었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과 같은 당시의 지식인들도 중국을 받들기는 마찬가지 였다.

삼국사기는 이러한 사대주의의 관점에서 편찬된 역사서 이다. 이 오류가 많은 역사서에는 육우가 지은 "다경(茶經)" 이전에 있었던 ,신라의 차 문화는 모두 무시하꼬 있다.

육우 사후인 서기 828년에 신라인 "대렴"이 중국의 차 종자를 얻어다 지리산에 심었다는 기록을, 한국 차역사의 기원으로 적고 있다.

심지어는 "삼국사기"에 적힌 신라인 이름을 "김대렴(金大廉)"이라 고쳐서 지리산에다 비석까지 세워놓고, 한국 차문화의 역사를 스스로 폄하하고 왜곡하고 있다.

정녕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우리나라의 기록은 믿지 않고 오직 육우의 "다경(茶經)"에만 의존하여 차문화를 말하려는 태도는 정녕 비판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역사의 왜곡과 오류를 살펴보는 것도 아주 의미있는 일이다. 이것은 또 다른 국수주의가 아니라 올바른 역사관을 갖기위한 정당한 노력이다.

스스로를 낮추어 중국문명에 예속되지 않기 위한 주체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따라서 육우의 기록보다 앞선 우리의 차례문화를 몇가지 짚어보겠다.

기원과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