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평 독후감 : 파브르 곤충기 전 10권 Set
재밌었다. 그리고 놀라웠다. 100년 만에 완역된 '파브르 곤충기' 제 1권을 독파하면서 느낀 첫 감상이다. 이후 10권까지 쉼없이 내리 읽어가면서 곤충들의 한살이에 푹 빠져 지냈다. 녀석들의 기기묘묘한 습성이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이런 매력적인 생명체를 탄생시킨 가이아의 넉넉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또한, 필자로 하여금 불혹이 지난 나이에 다시 곤충채집을 나서게 할 만큼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세상풍파를 겪으면서 한 켠에 제쳐두었던 키덜트로서의 꿈이 다시 솟아남을 경험하는 중이다.

 

파브르 곤충기는 단순한 벌레의 관찰기록이 아니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사의 다양한 일면들이 투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치밀하고 분석적이며 객관성을 유지하는 한편, 희로애락의 감정들이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어 지루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수려한 문체에는 시적인 운율이 느껴지며, 생기있는 언어로 표현의 다채로움까지 더해져서 정말로 다재다능했던 인물임을 짐작케 한다.그러나, 독자들도 이 책을 읽다 보면 알겠지만 파브르의 모든 면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안타까운 점은 분류학과 진화론에 대한 그의 배타적인 자세다. 전자의 경우에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폄하하는 글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독불장군형 스타일 말이다. 반면에 진화론에 대한 부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다윈의 논문은 당대의 주류학계에서 이단으로 취급받으면서 많은 비웃음을 샀던 이론이었으니 말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저자 또한 이러한 조류의 흐름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념과 꺽이지 않는 의지, 사실을 기록하기 위한 고집스러움과 타협을 모르는 태도는 본 받을만 하다.

과학자로서 이런 옹고집을 가지고 있었기에 파브르 곤충기는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집요함을 넘어 미련스럽다고 해야 할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하는 그의 관찰자세는 곤충의 독소를 실험하는 부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팔에다가 독성물질을 바르고 그 결과를 추적해가는 일이다. 참기 힘든 고통이 뒤따르며 한 차례의 실험에서 약 30일간에 걸친 후유증을 동반한다. 격통과 함께 발진, 수포와 진물, 그리고 가려움증과 화끈거림, 열독 등등의 피부질환이 그것이다.

이런 과정을 무려 7차례에 걸쳐서 진행시켰으니 7개월 동안 자신을 고문했던 셈이다. 그는 자신이 몸소 체험하고 관찰한 것만을 믿을 뿐이다. 이와 같이, 후대에도 꾸준이 읽히는 역작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불광불급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다.

 


지금도 생각 나는 관찰기록 중 하나는 3권에서 소개되는 '우단재니등에'라는 기생파리의 애벌레다. 녀석의 생존은 그 타이밍의 절묘함과 스킬에 있어서 곤충세계 최고의 암살자라고 부를만 하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영양섭취를 하는데, 독자로 하여금 정말로 또 다른 세상에 와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숙주가 되는 담장진흙가위벌의 유충은 탈바꿈을 위해 번데기가 되기 바로 직전에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때 애벌레의 내부는 모든 생체기관이 걸쭉한 유동성 액체로 바뀌며, 지방 알갱이가 포도송이처럼 신경다발에 매달려 있다. 이러한 지방질을 에너지원으로 해서 DNA에 새겨진 코드를 따라 성충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때에 기생충이 숙주의 영양분을 빨아먹는다. 식사법이라고 해야할지? 요리하고 해야할지? 그냥 주둥이를 희생자의 몸뚱이에 살짝 대기만 한다. 그러면 삼투압에 의해서 자양분이 우단재니등에의 목구멍을 타고 뱃속으로 저절로 흘러들어간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양분을 다 뺏앗기면서도 숙주는 죽지 않는다. 한 조각의 살점이 남을 때 까지도 피해자의 생체조직은 신선함을 유지하며 생명의 기운이 남아 있다. 이 얼마나 기막힌 방법인가? 물론 당하는 입장에서야 피워보지도 못하고 죽는 셈이니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하지만, 자연을 깊이 들여다 보면 기생생활은 삶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종에서 기생으로 종족을 유지하는 생명체는 대략 30%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인간의 시선으로 곤충들의 한살이를 재단할 수는 없다.

 

곤충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이들을 연구하는 전문가중에서도, 제대로 된 파브르 곤충기를 접한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책은 파브르가 그의 나이 56세 때인 1879년에 1권을 낸 이래, 86세인 1909년에 10권이 나오기까지 장장 30년에 걸친 고된 작업이었다.

놀라움을 넘어 부럽기조차 하다. 거의 환갑에 다다른 나이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하고 그 결실을 생전에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저자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레종 도뇌를 훈장을 2번씩이나 받게 된다.

그간 국내에 소개된 책들은 원전의 일부를 발췌해서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비전공자가 번역을 맡아서 문맥이 매끄럽지 못하고, 오역과 의역이 뒤범벅되어 제대로 된 원본의 참맛을 느끼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런 와중에 곤충학을 전공한 원로 교수의 사명감 하나로 번역이 시작되었으며, 무려 7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물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렇다. 거의 새로운 창작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본 전체는 2,000페이지에 달하는 막대한 분량이며 수록된 생명체만해도 1,500여종이나 된다.

이중 국내에도 있는 종은 겨우 100여종에 불과하다. 이 모든 데이타를 하나하나 우리말로 정확하게 옮기는 작업과 더불어 틀렸거나 나중에 바뀐 학명을 꼼꼼하게 바로잡았다고 하니, 파브르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역자의 노고에 깊은 사의를 표명했을 듯 싶다.

 

파브르 곤충기 등장 생물 목록 1
파브르 곤충기 등장 생물 목록 2
파브르 곤충기 등장 생물 목록 3
파브르 곤충기 등장 생물 목록 4

▲ 참고로, 낱권이 아닌 1질에는 '파브르 곤충기 등장 생물 목록' 이라는 소책자가 포함되어 있다. 학명이 나와 있으니 검색하기에 편리하다. 이 목록집은 따로 구매할 수도 있다.

 


아마도 파브르는 그의 인생이 행복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면서 --11권을 집필하는 도중에-- 생을 마감했으니 말이다. 필자 또한 곤충기를 읽는 동안 행복했었다. 비록 잠시지만 세상근심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노년에 사랑에 빠지는 것을 회춘기라 한다면, 불혹을 넘긴 나이에 곤충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아마도 곤충기라고 칭해야 할 듯 싶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단칼은 그렇다. 이제부턴 곤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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