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 '플래쉬 맙'의 원조 - 조롱박먼지벌레(Scarites)
7권에서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단칼이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시골에서의 수박서리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져가는 풍습이며 자칫하면 도둑놈으로 몰린다. 프랑스의 농촌에서도 이와 견줄만 한 짖궂은 장난이 있다.

우리에게는 삼계탕이 몸보신 식품이듯이 서양에는 칠면조 구이가 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이 날지 못하는 새를 한 마리씩 사로잡아 머리를 날개 밑에 처박는다. 이 상태로 얼마간 흔들었다가 땅위에 내려 놓는다. 그러면 새 대가리라는 명성에 걸맞게 도무지 움직이지를 못하는 것이다.

농장에는 이렇게 플래쉬 맙에 심취한 칠면조들이 여기저기 누더기 처럼 널려있다. 괴로운 칠면조가 꾸르륵 꾸르륵 울음 소리를 내면, 농가의 아낙네가 회초리를 들고 달려나온다. 말썽장이 꼬마들이 깔깔꺼리면서 재빨리 도망치는 모습이 떠오른다. 하~ 단칼도 닭으로 한번 실험을 해보고 싶다.

자. 이렇게 수면병에 걸린 것처럼 무기력한 상태를 보이는 곤충이 있다.

다시말해, 예상치 못한 자극에 의해 의사행동擬死行動(Thanatosis, 죽은체 하기)을 하는 녀석들이 상당수 있다. 그 중에서도 쌀바구미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갑충이다. 파브르의 관찰에 따르면 검정비단벌레(Capnodis tenebrionis)와 전갈(Scorpio)도 갑작스레 최면상태에 빠지는 곤충이다. 그렇지만 기절놀이에 일가견을 가진 녀석은 조롱박먼지벌레다.

녀석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면 그 즉시 마비가 되어 털끝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지속시간은 평균 20분 가량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한 시간 넘게 꼼짝않기도 한다. 파브르가 이 벌레의 습성을 관찰하려고 60분이나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단칼 같으면 지루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뭏든, 이렇게 부동자세를 취했던 곤충은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다. 먼저 앞 발목마디가 경련을 일으키고 수염과 더듬이가 흔들거리면서 기지개를 켠다. 엎어진 몸을 뒤집는 즉시 걸음아 나 살려라~ 36계 줄행랑을 친다. 요때 놈을 잡아서 괴롭히면 또 다시 졸도를 한다.

그렇지만, 먼지벌레도 학습능력이 있어서 언젠가는 죽은체 하기를 거부한다. 자빠뜨리기 무섭게 몸통을 뒤집어 도망을 치는 것이다. 파브르는 이처럼 가사상태에 빠지는 행동이 공격자를 속이려는 방어체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를 정밀하게 추적해 나간다.

자연상태의 조롱박먼지벌레는 땅속을 파고들어 피신을 한다. 따라서, 의사행동이 회피의 수단이라면 흙을 잽싸게 굴착하여 위험스런 환경을 벗어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지표면이나 부식토, 모래층, 유리판이나 책상, 그 어느 환경에서도 자신의 전술을 바꾸지 않았다.

또다른 시각에서 실험을 해보자. 혼수상태에 빠진 녀석이 깨어나는 것 또한 자극에 의해서다. 잠자는 성충에게 파리가 찾아왔다. 똥을 빨던 주둥이로 먼지벌레의 입근처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핥는다. 이러한 접촉으로도 녀석이 깨어나 도주한다. 하찮은 파리가 귀찮아서 일어난 것일까?

그렇다면 아주 힘쎄고 덩치도 큰 유럽대장하늘소(Cerambyx miles)로 실험해 보자. 하늘소가 조롱박먼지벌레의 몸을 밟고 지나간다. 녀석의 발목마디가 떨리면서 의식을 회복하고 빠른 속도로 달아난다. 때문에 죽은체 하는 행위는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속임수가 아니다.

사실, 먼지벌레들은 포악하기 그지 없는 육식곤충이다. 이렇게 타고난 도살자가 겁쟁이 일리는 만무하다. 특히나 폭탄먼지벌레(pheropsophus jessoensis)나 목가는먼지벌레(Brachinidae)등은 꽁무니에서 부식성 액체를 방사한다. 마치 스컹크가 항문에서 악취나는 분비물을 발사하듯이 말이다.

(이 물질이 인체에 묻으면 가려움과 염증, 각질화된 피부가 비늘처럼 일어난다.)
이번에는 빛으로 실험을 해보자. 지금까지는 햇볕이 들지 않는 연구실에서 관찰한 기록이었다. 탁자를 창문으로 이동시켜 널브러진 놈에게 광선을 쪼였다. 햇빛을 받자마자 벌떡 일어나 질주를 한다. 아하! 이제야 알겠다. 녀석의 경직 상태는 위장술이 아니었다. 단순히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 발생한 결과였다.

즉, 과도하게 예민한 신경이 성질급한 벌레에게 정신착란을 일으킨 것이다.
딱지날개가 튼튼한 대형의 검정비단벌레(Capnodis tenebrionis)도 의식장애를 가진 갑충이다. 미세한 쇼크에 의해서 한 시간 넘게 움직이지 않을 때도 있고, 단지 1~2분 만에 깨어나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무더운 여름철은 곤충들에게 살판 나는 세상이다. 추위가 찾아오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의사행위를 할 때 온도를 낮추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정말로 죽어버릴까? 아니면 무기력 상태가 유지될까? 파브르가 살던 시대는 냉장고가 없었으니 어떻게 실험할까?

방법은 시원한 우물물--실온보다 12℃ 가량 낮은--을 이용하는 것이다. 실신한 비단벌레를 표본병에 넣고 찬물을 담은 함지박에 띄운다. 결과는 고무적이다. 무려 5시간이나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만약 파브르의 인내심이 바닥나지만 않았다면 더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라 한다.

그러나, 왕조롱박벌먼지벌레(Scarites gigas)는 온도차에 따른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50분 간의 가사상태가 전부였다. 이 점은 이렇게 추측할 수 있다. 비단벌레는 뙤약볕을 좋아하기 때문에 기온 차이에 아주 민감하다. 하지만, 조롱박먼지벌레는 야행성이며 땅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므로 체감온도에 무덤덤하게 반응한 것이다.

이번에는 치명적인 독을 가진 전갈로 실험해보자. 캐스팅 된 녀석은 프랑스 남부 지방에 서식하는 랑그독전갈(S. Languedocien : S. ⇒ Buthus occitanus)이다. 숯불을 피워 둥그런 원을 만들어 놓은다음 녀석을 풀어 놓았다. 불꽃에 둘러싸인 놈에게 빠져나갈 틈은 없다.

뜨거운 열기와 퇴로가 없는 상태에서 잔뜩 화가난 성충은 독침이 달린 꼬리를 풍차처럼 휘두른다. 신경질적인 발작을 일으키며 광란의 칼춤을 추다가 그대로 나자빠졌다. 아무런 사전 징후없이 급작스럽게 K.O. 쭉 뻗었다. 외관만 보자면 영락없이 죽은 것 같다.

쓰러진 전갈을 옮겨 서늘한 모래밭에 옮겼더니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부활했다. 생기발랄하여 기운생동하니 사방팔방 종횡무진 돌아다닌다. 완벽하다. 곤충이 사기를 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협잡꾼이 활개치는 곳은 인간세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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