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 혁신적인 생존스킬을 가진 기생충 - 우단재니등에(Anthrax)
3권의 주인공 중 하나인 우단재니등에를 살펴보자. 녀석의 학명은 무시무시한 '탄저병'을 의미한다. 이 치명적인 질병은 피부가 썩어 구멍이 뚫리면서 피고름이 흐르는 증상을 보인다. 얼마나 끔찍한 기생충이기에 이런 오명을 받게 되었을까?

여기서 한마디 경고의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겠다. 이놈의 생긴 모양을 보려고 구글에서 검색을 할 때는 'Anthrax' 말고 'Bombylius(재니등에)' 로 찾기 바란다. 전자로 이미지를 찾게 되면 전염병에 희생된 환자들의 끔찍한 모습을 보게 된다. 심신허약자에게 트라우마가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라.

자. 그럼 본격적으로 파브르의 관찰기를 살짝 들여다보자. 재니등에는 파리목에 속하는 기생충이다. 성충은 꽃에서 꿀을 빠는 녀석인데 곤충중에서는 박각시와 더불어 정지비행을 할 수 있는 놈이다. 다리는 머리카락 보다 가늘고 주둥이에 날카로운 침이 솟아나와 있다.

7월 달에 담장진흙가위벌(Chalicodoma muraria)의 침실을 조사하면 2개의 전용(번데기 직전의 무기력 상태)을 발견할 수 있다. 한 마리는 피부에 윤기가 흐르면서 건강한 상태이지만, 또 다른 하나는 푸석푸석하게 찌그러든 모양이다. 이 신선한 생명체는 나중에 탈바꿈 하여 재니등에가 되고 시들어버린 유기체는 우화하지 못하게 된 진흙가위벌이다.

우단재니등에 애벌레의 식사법은 정말로 기상천외하다. 놈의 유충은 숙주가 전용상태에 빠진 바로 그 시기에 둥지에 침입한다. 그리하여 혼수상태에 빠진 피해자를 무지막지하게 착취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희생자에게 어떤 폭력도 가하지 않는다.

그냥 먹잇감의 몸통 아무곳에나 주둥이를 살짝 대기만 할뿐이다. 입술이 스쳐간 그 자리에는 어떠한 흠집도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생충은 점점 자라난다. 그에 비해 비해 피식자는 서서히 쇠약해지며 삶을 마감한다.

쉽게 말해 영양실조로 말라가는 것이다. 마치 거식증에 걸린 환자처럼 뼈와 살가죽만 남은 모습을 상상하면 되겠다.

이와 같은 방법이 가능한 이유는 강탈당하는 자의 신체구조에 있다. 전번데기(전용) 상태의 몸 속은 마치 죽과 같은 유동성 액체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 그물처럼 역인 신경조직과 근육섬유들, 그리고 무히 많은 지방 알갱이와 요산 덩어리(尿酸)가 떠다닌다.

완전변태하는 담장진흙가위벌은 이러한 지방질을 자양분 삼아서 세포를 분열시킨다. 즉, DNA에 새겨진 프로세스에 의해서 각 신체기관이 만들어지고 성충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런데, 등에의 애벌레가 바로 이 타이밍을 잡아서 숙주의 지방을 갈취한다.

이 과정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맨질맨질했던 피부가 생기를 잃고 시들어가며 잔주름이 덮인다. 체내의 기름덩이가 약탈당하면서 몸집이 점점 작아져만 간다. 성장과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기생충이 빨아먹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둑질이 2주간 진행되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있다.

오로지 피부껍질만이 남겨진다. 게다가 이 피막조차 동그랗게 말려서 뭉쳐진다. 그 크기는 채 1mm도 되지 않는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이 껍데기를 물에 넣으면 삼투압에 의해서 본래의 크기로 되살아난다는 점이다. 또한, 이 물통은 미세한 틈도 없기 때문에 뒤집어 놓아도 물이 쏟아지지 않는다.

이러한 진행의 모든 경로에서 피식자는 죽지 않고 희미한 숨결을 간직한다. 죽은 뒤의 흔적인 부패는 전혀 없다. 마지막 한 점 남은 살덩어리 조차도 프레쉬한 생명의 기운이 느껴진단다. 단칼의 살결에 소름이 돋는다. 놈의 학명인 Anthrax가 의미하는 바를 이제는 알겠다. 정말 최고의 스킬을 가진 기생체이다.

파브르는 이 정밀한 관찰을 통해 기생충의 영양섭취는 빨아들인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다음과 같은 시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

"다른 애벌레에서 보지 못한 이런 소화기관의 입구를 정확히 표현할 단어를 찾아내라면 나는 그저 흡수구(吸收口)란 말밖에 못하겠다.

녀석의 공격법은 대단찮은 입맞춤뿐이다. 하지만 그 얼마나 무서운 입맞춤이더냐!"

- 현암사의 파브르 곤충기 3권 167쪽에서 인용 -

자, 먹잇감을 해치운 우단재니등에 유충은 7월 말 부터 이듬해 5월 까지 진흙가위벌의 고치 속에 머문다. 이윽고 봄 날이 완연해지면 허물을 벗고 번데기로 바뀐다. 그런데 붉은 기운이 도는 녀석의 각질 외피는 7가지의 연장을 박아 넣은 맥가이버 칼로 변해 있다.

▲ 놈은 이 기묘한 굴착도구를 이용해 갱도를 탈출한다. 관찰자는 양쪽이 막힌 수수깡 속에 녀석을 가두었다. 그리고는 이 대롱을 유리관 안에 넣었다. 자연상태의 고치와 거의 비슷한 환경이다.

이제 광부가 된 녀석은 디스코를 춘다. 엉덩이에 달린 2개의 가시털로 점프를 하면서 대가리에 솟구친 뿔로 막힌 곳을 힘차게 찌른다. 칸막이를 조금씩 파내는 것이다. 가끔씩은 자세를 달리한다. 벽에다 머리의 송곳을 쑤셔 박고 궁뎅이를 축으로 하여 온몸을 흔들어댄다.

이런 식으로 24시간 동안 2cm를 전진한다. 드디어 구멍이 뚫렸다. 번데기는 상체만 밖으로 내놓고 하반신은 굴속에 고정시킨다. 이때 등판에 나 있는 억센 털이 발판의 역할을 한다. 즉, 수수깡 벽에 강모(剛毛)가 박혀서 뒤로 밀리지 않는 것이다. 모든 준비가 끝났고 이제 우화하여 성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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