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은 참새의 일대기Sold for a Farthing

클레어 킵스Clare Kipps 저 / 안정효 역 / 모멘토

 

라디오 청취중 우연히 들었던 추천도서였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내용, 마음을 잡아끄는 속사정에 제목이 뭔지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던 서적이다. 타이틀을 듣자마자 책을 손에 넣었다. 두근거리며 개봉, 앞 뒤 표지를 한동안 들여다보다가 책상위에 던져놨다.

나에게는 묘한 기질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고대하던 것을 얻게 되면 상당한 시간 동안 무관심한 척 뜸을 들인다는 것이다. 그렇게 못 본척 방치를 해 두고 방 청소를 하거나 샤워를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마치 심마니가 산삼을 캐러 가기전에 몸을 깨끗이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는 --인간 행동의 심리적인 원인을 파악하려는-- 행동재무학에 따르면 매우 자연스러운 본능 중 하나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고대하던 결과를 얻게 되면 그 흥미가 반감되어 버린다. 이러한 예는 무수히 많다. 가령, 쇼핑 중독자는 물건 자체보다도 그것을 사는 과정에서 더 많은 희열을 느낀다.

즉, 모니터 화면에 나온 형형색색의 상품을 고르면서, 제품의 배송위치를 추적하는 기다림 속에서 엔돌핀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그 결과로써 온갖 쓸데없는 물품이 집안 가득히 쌓인다. 도박이나 마약 중독자도 이와 같다. 그들은 카지노 입구에서 들려오는 기계음, 칩이 짤랑거리는 소리, 주사기나 밀가루를 보기만 해도 흥분한다.

뇌하수체에서 아편성분이 뿜어져나오는 것이다. 이때 인간 두뇌를 촬영한 필름을 보게되면 세 경우 모두 차이를 느낄 수가 없다고 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단칼의 특이한 습성은 인류가 가진 아주 보편적인 행동양식인 셈이다. 자 그렇다면 뜸과 재미, 이 두가지 감정이 뒤섞인 비율은 얼마나될까?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니까. 잠시 샛길로 빠졌는데 다시 돌아가자. 아뭏든 이렇게 주변을 정리한 다음 드디어 --받은지 2틀 후에-- 첫 장을 넘겼다. 작가의 가감없는 서술이 전개되면서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번역도 탁월해서 거슬리는 점이 없어서 매우 좋았다.

참고로 중견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이 책의 번역자인 안정효는 '재미가 없으면 절대 하지 않는다' 를 모토로 삼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2차대전 종전후에 번역이 되었으며 일본에는 1960년대에 소개가 되었음.

 

플롯은 지극히 단순하다. 불구로 태어난 참새(클레런스)가 피아니스트인 저자와 12년 동안 함께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뭐 그저 그런 애완용 새와의 교감을 적은 것이겠지' 하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 대상은 자기능력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작은 집참새(유럽참새)가 증명한다.

놀랍게도 녀석은 자기 혼자서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 한마디로 싱어송라이터다. 게다가 요 작은 털북숭이 꼬마가 나찌의 공습을 피해 방공호로 대피한 영국인들에게 선사한 웃음은, 그들의 고달픈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월트 디즈니의 영화에서나 가능할까 싶은 상상밖의 묘기는 클래런스를 정말 특별한 참새로 만들어주었다.

히틀러를 흉내내면서 졸도하는 시늉까지 할 정도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무대에 오른 녀석은 점점 목소리를 높여가면서 절정에 이르러 꼴까닥 기절해서 바닥에 떨어지는 연기력까지 보여준다. 하하하. 그 뿐인가? 저자와 클레런스의 서로에 대한 완벽한 믿음과 애정은 다음과 같은 사랑스럽고 별난 행동을 불러 일으킨다.

22쪽에 나온 내용을 조금 발췌했다.
"내가 아는 한 야생 조류들은 발랑 눕는 법이 없어서, 그런 자세를 취한 새라면 죽은 놈이라고 판단해도 별로 틀림이 없으리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나의 어린 새는 걸핏하면 발랑 누워서, 아기나 고양이가 그러듯이, 두 발로 발길질하기를 좋아했다.

나 이외의 낯선 사람이 혹시 접근하려고 하면 예외 없이 굉장히 민첩한 동작으로 벌떡 일어나 앉고는 했다. 이것은 우리 둘이서만 있을 때면 두려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는 그의 심리 상태를 확실하게 보여 주었고........"

 

이렇게 알콩달콩 살아가는 두 모자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연인? 그것도 아니면 동료? 아뭏든 12년 일곱 주일하고 나흘동안 그들은 함께 했다. 인간에게는 짧은 시간이지만 참새에게는 일평생이다.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남은 시간 동안, 이 둘에게 일어나는 잔잔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클레런스=집참새=house sparrow=유럽참새=학명은 passer domesti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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