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제국(Parasite Rex : Carl Zimmer 지음) - 이석인 옮김 - 궁리
 

"인간은 기생충이고 숙주는 지구다." 저자가 이 책의 끝부분에 던진 말이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는 하지만 너무 가혹한 평가가 아닐까? 천만의 말씀, 그에 의하면 인류가 기생 생활을 하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가이아와 공생하기 위해서 기주를 해치지 않는 방법을 배워야 할 뿐이란다.

필자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패러사이트에 대해 혐오스러운 편견을 갖고 있을 것이다. 박멸의 대상이며 무위도식하는 백해무익한 존재. 이것이 그들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이다. 하지만 작가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그러한 고정관념을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다위니즘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생충은 진화를 가속화시킨 장본인이다. 어떻게 기여를 했을까? 거대한 바오밥 나무와 같은 생물 계통도를 들춰보면, 말라리아(Malaria = 학질)와 수면병(Sleeping sickness)을 일으키는 기생충들은 모두 진핵세포의 가지에 달려있다.

이러한 미생물중의 하나인 ◈리케치아 프로와제키이(Rickettsia prowazekii)◈ 는 발진티푸스를 일으키는 세균이다. 그런데 이 박테리아의 유전자는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 :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관)◈ 와 매우 닮았다. 다시 말해, 두 생명체 모두에게 공통된 조상이 있었다는 말이다.

수십억 년 전의 이 원생생물은 초기의 진핵세포 세대를 거치면서 다른 박테리아를 섭취한다. 이때 숙주는 광합성에 꼭 필요한 엽록소를 획득하게 된다. 이 포식자가 진화를 거듭하면서 해조류와 육상 식물이 되어 지구상에 산소를 공급한다. 다시, 수백만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해조류를 잡아먹는 미생물이 등장한다.

이 새로운 기주는 피식자의 속을 파내어 그 핵과 미토콘드리아는 버리고 엽록소만 남긴다. 이 약탈자가 바로 열원충(Plasmodium)의 조상이며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원인균이다. 60억 년에 걸친 이 드라마가 바로 어떻게 해서 항생제가 학질을 치료할 수 있는지 설명해준다.

열원충의 내부에는 극히 중요한 작업을 하는, 과거에 박테리아였던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리케치아 프로와제키이로 갈라져 나간 세대는 악순환을 거치면서 병원균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미토콘드리아는 자신의 숙주에 평화롭게 정착했다. 바꿔 말해, 진핵세포는 우리가 진화 과정에서 운좋게 얻은 기생충이었다.

이쯤 되면 우리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영화가 있을 것이다. 바로, '에일리언Alien' 이다. 헐리우드가 왜 이렇게 녀석들에게 집착하는 것일까? 그들의 생리가 --인간의 시각으로 보자면-- 엽기적인 이유도 있지만, 우리 무의식의 깊은 근저에는 놈들과의 치열한 싸움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인간을 포함하여 다른 많은 생물들이 성별을 가지게 된 것은, 기생충 때문이라는 증거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학자들은 설치류의 면역계가 기생체의 번식방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아냈다. 연구자들이 쥐에게 분선충(Strongyloides stercoralis : 동물의 장내에서 염증과 편두통을 일으킴)을 주입하자 당연히 면역반응이 나타났다. 그런 다음 약물을 투입하여 모든 기생물을 없앴다.

따라서 생쥐는 기생충에 대해 학습된 상태다. 다시 그 실험쥐를 분선충으로 감염시키자 놈들은 주로 성별을 지닌 알을 낳았다. 이어지는 실험에서 관찰자들은 방사선을 쬐어 쥐의 면역 시스템을 약화시키고 기생충으로 다시 오염시켰다. 그러자 녀석들은 암수를 구별하기 보다는 스스로를 복제하려고 애썼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기생체들은 무성생식을 선호하지만, 건강한 면역체계 때문에 유성생식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자, 이 부분은 혹시나 '실험자 편향' 때문은 아닐까? 결과를 성급하게 일반화하는 것일 수도 있으므로 조금 더 쉽게 풀어보자. 아메바가 유성생식을 한다고 상상해 보라. 암수는 자신들의 DNA를 절반씩 결합해서 새끼를 만든다. 때문에 이렇게 발생한 단세포 생물은 부모들의 완벽한 복사본이 될 수 없다.

즉, 양쪽에서 받은 유전자가 겹겹이 뒤범벅된 새로운 원생동물이다. 따라서 기생생물은 이제 숙주를 따라가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다시 말해, 유성생식은 기주뿐만이 아니라 기생물에게도 종의 유지에 더 유리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압박에 의한 결과였지만 진화의 역사는 '토인비Arnold J. Toynbee'가 말한 도전과 응전의 장대한 파노라마인 것이다.

 


 

곤충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메뚜기나 사마귀의 몸을 뚫고 나오는 '연가시(Nematomorph : 철사처럼 생긴 40cm 정도의 기생충)' 를 알 것이다. 놈들은 성체가 되면 알을 낳기 위해 숙주를 물가로 이끈다. 어떻게 해서 기주의 행동을 제어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정말로 흥미롭기 그지없는 사실이다.

만약, 어떤 행위의 숨겨진 이유가 기생체 때문이라면 틀림없이 깜짝 놀랄 일이다. 그러나 더 기절초풍할 일이 남아있다. 기생생물 스스로 개체수를 조절하는 집단지성에 대한 내용이 이 책에서 밝혀진다. 뿐만 아니라 현대에 이르러 만성고질병으로 자리 잡은 광범위한 피부질환도, 기생물을 너무 완벽하게 제거했기 때문에 생긴 질병이라고 한다.

즉, 아토피나 알러지와 같은 과민한 면역반응, 장염이나 크론병(Crohn's Disease : 위장관에 손상을 일으키는 염증)등은 모두 인체의 면역계가 독성물질을 뿜어대면서 자신의 세포를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증상이다. 그런데 기생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런 면역체계가 좀 더 온순해진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미토콘드리아처럼 어떤 기생충은 공전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려준다.

 

 

헤르메스가 평화의 상징으로 들고 다녔다는 지팡이 '카두세우스Caduceus'. 이는 막대기 하나에 뱀이 덩굴처럼 감긴 모양이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의학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이 상징물은 '메디나충Guinea worm'으로 알려진 기생생물을 형상화 한 것이다.

치료법은 오직 한 가지, 바로 막대에 벌레를 감아올려 살아있는 상태로 기어 나오게 하는 것뿐이다. 만약, 조급하게 뽑아내려고 하다가 기생물의 일부가 인체 내에 남게 되면 치명적인 염증을 일으킨다. 오래전에 누군가가 이 방법을 알아냈고 세월이 지나면서 카두세우스로 바뀌었다.

이와 같이 신화 속에도 등장하는 기생충은 인류와 함께 해온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가이아는 인간에 대한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일테면 질병이나 기아, 자연재해와 같은 방법으로 인구를 조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의약품과 수세식 화장실 등의 도움으로 이를 교묘하게 피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지구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우리는 기생충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환경파괴를 일삼으면서 숙주를 너무 심하게 손상시키면 남는 것은 모두의 공멸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했다. 칼 짐머를 통해 우리는 기생충에 대한 편견을 어느 정도 벗겨낼 수 있을 것이다.  

 


 

★ 다음은 이 책에 소개된 몇몇 기생충 관련 질병들. 충격적인 사진이니 심신허약자는 주의 ★
 

상피병Elephantiasis - 사상충으로 생기는 병.                      회선사상충증River blindness - 강변실명증  

에스푼디아Espundia - 리슈만편모충leishmania에 의한 괴사증       메디나충Guinea worm  

카두세우스 : 헤르메스의 지팡이  

 


 

◈ 리케치아 프로와제키이라는 이름은 20세기 초반에 미국의 하워드 리케츠Howard Ricketts 와 체코의 스타니슬라우스 폰 프로바제크Stanislaus von Prowazek 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리케츠와 프로바제크는 튀니지계 프랑스인인 샤를 니콜Charles Nicolle 과 함께 발진티수프가 인간의 몸에 기생하는 이의 배설물을 통해 옮겨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침내 1930년대 발진티푸스의 예방백신이 개발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리케츠와 프로바제크를 포함한 선구적인 연구자들은 거의 모두 발진티푸스로 세상을 떠났다. 유일한 생존자인 니콜은 헌신적인 연구를 인정받아 1928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 『미토콘드리아 - 닉 레인 지음 - 김정은 옮김 - 뿌리와 이파리』에서 인용함.

 

◈◈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미토콘드리아(오래전에는 기생충이었음)가 바로 생명진화의 원동력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즉, 미토콘드리아로 인해서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생겨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은 60억년 이라는 지구에서 오로지 단 한번만 일어난 블랙스완(발생 가능성이 거의 없는 희귀사건)이었다.

학자들에 의하면, 미토콘드리아는 생노병사와 성의 구분, 그리고 아포토시스(apoptosis, 예정된 세포자살)를 일으키는 근원이다. 여러가지 증거와 증명을 통해서 이 학설이 점차 주류로써 인정받고 있다. 단칼이 향후에 이 책의 서평도 작성할 것이니 기대해도 좋다. 기생충에 대한 이해가 더욱 넓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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