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2편 - 정준호 지음 / 후마니타스
 

단칼이 수삼년에 걸쳐서 시청한 미국의 프랜차이즈 상품인 '스타 트렉Star Trek' 시리즈에는 --영화까지 포함해서 한편도 빼놓지 않고 모두 봤으니 나도 트레키trekkie 해당할까? -- 매우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나온다. 우주선의 모든 승무원들이 정신나간 행동을 하다가 나중에는 전함을 스스로 파괴시켜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으흠. 가만 있어 보자. 아마도 대머리 함장 피카드가 나오는 '다음 세대The Next Generation' 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아뭏든 조사 결과 그 원인은 외계 생명체가 인체내에 침입하여 잠을 자지 못하게 만듬으로써 발생한 사고였다. 이처럼 졸음은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수수께끼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것 조차도 기생충 때문이라는 가설이 최근에 설득력을 얻고 있다(Opp 2009). 숙면을 통해 면역계는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으며, 수면 시간을 조절하는 기능도 담당한다(Opp 2005). 잠을 자지 못하게 한 쥐의 경우에는 전신성 박테리아 감염으로 죽어버렸다.

인간의 경우 백신 접종을 전후하여 불면증에 시달리면 항체 반응이 떨어져 약효가 충분히 나타나지 않는다(Everson et al. 2000 : Spiegel 2002). 최근의 연구결과를 보면 조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체내 백혈구가 증가했고, 기생충 감염량이 줄어들었음을 보여 주었다(Preston 2009). 특히나 동물들의 겨울잠은 기생충을 억제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동면하는 동안 아무런 영양섭취도 없이 체온을 거의 0도에 가깝게 떨어뜨려 장내 기생물을 없애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동물실험에서 많이 관찰할 수 있다. 촌충에 감염되어 있던 다람쥐가 겨울잠을 자고 났더니 기생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모르모트를 해부해 보았더니 장내 선충을 한마리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보고도 있다.

인간의 수면 시간도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감소했는데, 이는 생활환경의 변화도 한 몫을 했겠지만 감염성 질환에 노출되는 빈도가 줄어 든 것에도 원인이 있다. 바꿔 말해, 기생충과의 경쟁이 적어지면서 면역계가 소비하는 에너지도 감소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우리의 잠자는 시간도 적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Jean-Louis 2000).

 


 

으흠. 그렇다면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속설도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갖게 된다.^ ^ 이런 시각을 전 지구적으로 확대해보면 어떨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현생 인류는 간빙기에 살고 있으니, 어쩌면 빙하기는 지구가 기생충을 몰아내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행하는 박멸활동 일지도 모르겠다. 천도교에서 말하는 천지개벽!

한편 세계사적으로 보면, 본격적으로 기생충학이 유럽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대항해 시대의 시작과 함께였다. 다시 말해, 제국주의를 등에 없고 세계로 전파된 것은 기독교 뿐만이 아니라 기생충도 해당된다.

유럽인들이 --대표적인 약탈자로 에르난 코르테즈와 프란체스코 피사로가 있음-- 남아메리카로 옮겨간 기생체와 전염병은 잉카와 마야, 아즈텍 문명을 절멸시켰으며, 이는 노동력 감소를 불러일으켜 아프리카에서 노예무역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 /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 저 / 김진준 역 / 문학사상사' 에서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으며, 앞선 단칼의 서평 '인섹토피디아 Insectopedia / 휴 래플스Hugh Raffles 저 / 우진하 역 / 21세기북스' 에서도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또한, 2차 세계대전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전장 중 하나인 태평양 전선은 말라리아가 극심한 피해를 입히던 지역이었다. 당시 학질 치료제인 '키니네'의 확보는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문제였으며, 이에 따라 일본 제국주의는 세계 최대의 키니네 생산지인 자바섬을 점령했다.

이와 같은 위기를 극복하고자 미국은 새로운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였다. 그리하여 모기를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살충제를 개발했는데, 이것이 바로 DDT다. 이처럼 기생충은 전쟁의 승패와 생사를 좌우하기도 한다.

 

1940년 장제서의 국민당 군대는 공산당에 대패해 대만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이때 20만 병력의 공산당은 모두 중국 북부에서 차출된 병력이었기에, 양쯔강 이남에서 창궐하는 주혈흡충증을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다.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이들은 기생충에 감염되어 고열과 혈변을 동반한 설사로 전투가 불가능해졌다.

이 천금같은 기회를 얻어 미국의 개입이 이루어졌고 국민군은 타이뻬이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당시 주혈흡충증은 1억 명이 넘는 중국인이 앓고 있었던 흔한 질병이었다.

 

 

에이즈가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전파된 것처럼, 기생충 질환도 열대우림의 무차별한 개간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2009년 브라질에서 행해진 연구에 따르면 우림의 5%가 개발되면 그 지역의 말라리아 환자가 무려 5배인 25%나 증가한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이 뿐만이 아니다. 기생충은 농작물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우리는 맛이 형편없는 '캐번디시' 라는 단 1종의 바나나만을 먹고 있다. 원래 이 과일은 종류가 매우 다양해서 무려 1천 여 종이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통일된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상업성 때문이었다. 그 이전까지 전 세계로 수출되던 바나나는 '그로스 미첼' 로써 맛과 당도에서 월등한 품종이었다.

그런데 기생 곰팡이가 일으키는 파나마 병이 창궐하여 모든 농장이 쑥대밭이 되고 만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바로 캐번디시다. 당시에는 품질이 떨어져서 아무도 먹지 않았었는데, 질병에 강하다는 이유와 장거리 수송에 적합하다는 까닭으로 모든 바나나 회사가 이를 심게 되었다(Koeppel 2008).

문제는 지금 캐번디시를 감염시키는 파나마 병 기생충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퍼져나간다는 것이다. 만약 이 상태가 계속되면 더이상 바나나를 먹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도 있다. 유전적 다양성을 해치는 인간의 탐욕은 이런 비극을 몰고 온다. 구제역과 뇌송송구멍뽕을 일으키는 광우병도 마찬가지다.

 


 

기생충에 대한 답은 기생충에 있다. 우리에게 동충하초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병원성 곰팡이(백강균/녹강균)가 바로 그것이다. 백강균과 녹강균은 아무런 오염 물질이나 부작용도 일으키지 않는 친환경적인 살충제다. 이미 메뚜기나 흰개미 방제용으로 널리 쓰이고 있으며 효과 또한 입증되었다.

이 곰팡이에 감염된 모기는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모조리 죽었다. 치사율 90% ~ 100%. 기생충으로 재미를 보는 사업과 개인도 있다. '쌍자흡충Diplozoon paradoxum' 은 물고기의 아가미에서 쉽게 발견되는 기생체다. 모양은 나비처럼 생겼는데 이는 암수 두마리가 합쳐져서 성충으로 자라난 결과다.

시작은 각기 자웅동체로 출발하지만, 자신의 짝을 만나면 완전히 한 몸으로 합체를 한다. 이를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어서 판매하는 곳이 바로 일본의 메구로 기생충 박물관이다. 한편, 구충(과거의 십이지장충)에 감염되면 빈혈을 일으키는데 여기에 덧붙여 매우 독특한 질환을 일으킨다. 그건 바로 이식증이다.

즉, 흙이나 페인트 조각처럼 이상한 물건들을 집어먹는 증상이다. 과거에 미국 남부에서 구충 감염이 확산되었을 때는, 감염자들 사이에서 특정 지역의 진흙이 별미라는 입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이에따라 당연하게도 이를 사업수단으로 만든 사람이 나타났고 이 진흙을 전국으로 배송하는 비즈니스를 벌였다.

이 사업은 십이지장충이 박멸되기 전까지 번창일로에 있었다고 한다.(Larry & Janovy 2000). 이를 보면 TV쇼에 가끔 등장하는 기인들은 정기적으로 기생충 검사를 받아봐야 할 수도 있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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