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복성 곤충기

조복성 저 / 황의웅 엮음 / 배연재 해제 / 이제호 그림 / 뜨인돌
 

1948년에 출간되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곤충기라고 할 수 있다. 엮은이가 우연찮게 고서점에서 발견하여 현대에 맞게 손을 봐서 복간 했다. 전반부는 벌레에 대한 이야기지만 뒷부분은 당시의 생활풍속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내용들이 간간히 소개된다.

가령, 나비로 유명한 석주명 박사와의 조우, 중국에서 행해지는 귀뚜라미 싸움과 그로 인한 도박시장. 만주지역에 사는 소수민족들의 독특한 생존방법, 스틱걸(남성들을 유혹해 팔짱을 끼고 가는 게 지팡이를 대신하는 것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거리의 여성)의 등장, 원래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바퀴벌레 이민사.

주둥이로 쏘는 놈이란 뜻의 '쏨쟁이' 에서 유래한 소금쟁이의 습성, '울릉도하늘소'가 일본인에 의해 도용되어 미기록종으로 보고 되는 에피소드등등이다. 참고로, 귀뚜라미 싸움은 '인섹토피디아Insectopedia / 휴 래플스Hugh Raffles 저 / 우진하 역 / 21세기북스' 에서 한 챕터를 할애할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

귀뚜라미 결투는 전 세계를 통틀어 오직 중국에만 있는 도박문화다. 아뭏든, 단칼이 보건데 지은이는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며 대단한 수재였던 것 같다. 해방되기 몇 년전 그는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많은 양민을 학살하고 세운 만주국, 거기에 있는 남경박물관에서 근무하게 된다.

이때 작가는 일본유학을 희망하는 소학교 교사를 소개받아 중국어를 배우고 자신은 일본어를 가르쳐준다. 저자의 외국어 공부법은 오늘날의 그것처럼 입체적이다. 시청각 학습을 통해 짧은 기간에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책에 나온 일부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첫날에는 영화를 보고 다음 날에는 눈을 감고 스피커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면 어제 본 화면과 연결되어 애매모호하고 이해가 잘 안 갔던 대화도 얼추 짐작이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날에는 완전히 눈을 감고 들어도 웬만큼 이해가 되었다. 그런식으로 나는 짧은 기간에 중국어를 마스터할 수 있었다. 그러자 멍텅구리 일본인들한테 어느새 신비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놀랍도다. 학창시절 내내 영어 공부를 했어도 겨우 몇 단어만 말할 수 있는 나하고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ㅎㅎ

 

 

경제개발이 한창인 6,70년대를 겪은 사람들이라면 '연탄 가스 중독의 자가 치료법' 이라는 언론 보도를 알고 있을 것이다. '식초 냄새를 맡게 되면 증상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다.' 일산화탄소로 혼수상태내지는 비몽사몽을 헤메는데 이러한 민간요법이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조금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근거조차 불분명한 헛소리였다.

그 뿐인가? '일본뇌염모기 구별법' 이라는 뉴스도 많이 나왔었다. 즉, '꽁무니를 번쩍 쳐들고 피를 빠는 것이 학질모기, 치켜들지 않고 흡혈하는 것은 그냥 모기.' 이렇게 구분할 수 있으니 위생에 주의하라는 내용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이것도 되게 웃기는 일이다. 잠든 사이에 물고 도망치는 녀석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러한 속설에는 '조복성 곤충기'의 다음과 같은 관찰 결과 때문이 아닐까? ^ ^

"사람을 무는 놈은 모두 암컷이다. 수컷은 이슬과 꿀(식물의 즙액이나 진액도 먹음)을 빨아먹고 산다. 자손을 남겨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과 그로 인해 영양분(단백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면 암컷의 이런 행동도 이해하지 못할 게 없다. 다행이도 학질모기를 구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녀석의 날개에는 검은 점이 있고 머리를 숙여 배를 들고 앉으므로 일반모기와 구별하기가 쉽다. 물에 사는 곤두벌레(장구벌레의 북한말)가 이 모기의 새끼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조복성 곤충기는 '만주일대의 곤충과 풍속 채근담' 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처럼 남과북이 분단되어 있지 않은 그 시절, 저자는 함경북도와 간도로 곤충채집을 간다. 당시 이 지역에는 벌레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이 종종 거주를 하면서 활동했다고 한다.

그 중 러시아 혁명 때 이주해 온 '게오르게 얀코프스키George Jankovski 라는 사람은 온 가족이 나서서 열성적으로 채집을 한다. 저자가 보기에 이들의 채집활동은 꽤나 독특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은 흔히 사용하는 깡통트랩과 번데기 채집을 소개하고 있다. 즉, 빈깡통이나 종이컵 바닥에 미끼를 넣고 이것을 땅속에 심는다.

그러면 딱정벌레들이 그 속에 빠져서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식이다. 작가가 언급한 말로 따져볼 때, 당시 우리나라에는 대중화되지 않았던 일종의 신기술 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아뭏든 이런 식으로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종이나 희귀한 곤충을 잡아서 수집가들에게 팔면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이나 그때나 완전한 별천지였던 백두산과 울릉도 곤충채집도 소개하고 있다.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천연의 원시림, 이 곳의 나비들은 사람을 접해보지 않아서 전혀 경계심이 없다. 일행들의 모자나 가방, 어깨등에 앉아서 날아가지를 않으니 그냥 손으로 잡기만해도 채집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에는 꿈도 꾸지 못할 방법이다. ㅎㅎㅎ

또한, 간도에서는 우리나라 광릉에서 볼 수 있는 장수하늘소보다도 월등이 몸집이 큰 개체를 발견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지역에 사는 소수민족 --대부분 중국인과 몽골인의 혼혈이며 자신들만의 언어를 가졌다고 함-- 들의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다. 이곳 주민들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밖으로 데리고 나가 눈으로 문질러 목욕을 시켰단다.

그것도 무려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에 말이다. 이런 엄동설한에 살아남은 아해들만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니 이것은? 우리가 농담처럼 던지는 --이건 미신이다. 알지?-- 사자가 제 새끼를 낭떠러지에서 밀어버리는 방법과 똑같지 않은가? 아니 설마?

이 내용을 각색하여 구렁텅이에서 올라온 사자새끼만 늠름한 사자왕으로 성장한다는 얘기가 된것은 아닐까? -_- a 뭐쨌거나 어린이들에게는 재미를, 어른에게는 추억을 생각케 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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