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의 아날로그 DJ 장민욱
 

 

80, 90년대 다운타운 DJ는 지금의 인기 유튜버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
조금 놀아봤다는 사람 치고, 음악다방 DJ에게 신청곡을 내밀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었던가?
그렇게 새파랗던 이들이 이제는 장년이 되어버렸다.

라디오에서는 이종환, 박원웅, 김기덕이 3대 DJ로 불리웠다.
그 윗 세대로는 최동욱, 임국희 이고 김광한의 인기도 대단했으며 뒤를 이어 이수만, 이문세, 배철수 등이 배출 되었다.

"이 유명하신 분들과 형동생 하면서 DJ로서 세월을 보낸 지가 40여 년 입니다. 평생을 디제잉 하면서 보냈지요."

 

중후한 저음이 매력적인 아날로그 DJ 장민욱(65)의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단 한 명 남은 LP를 틀어주는 DJ. 가수이며 색소니스트도 겸하고 한국방송DJ협회 이사의 타이틀도 갖고 있다.

그 이는 현재 서울 인사동과 낙원상가 사이에 위치한 "추억더하기" 카페에서 시니어를 위한 디제잉을 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DJ라는 직업은 무엇일까?

 

 

 

"원 맨 방송인입니다. 1인 다역을 해야 하죠.
자신이 PD이면서 엔지니어링도 하고 작가의 면모를 갖추고 아나운서 역할을 합니다.
시의성 있게 여러 사회적 관심사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어야 하죠. 디제잉은 현장 방송이므로 짜여진 각본이 없습니다.

그날 그날 화제거리를 생각하며 어떤 멘트를 할까 고민합니다.
음악만 틀어 준다고 해서 만만히 봐서는 안 됩니다. 익히 잘 알려진 팝송뿐만 아니라 월드 음악까지 두루두루 알고 있어야 합니다."

 

 

 

조숙했던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중음악이 좋았다고 한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는 팝송에 푹 파묻혀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DJ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렇게 학원가에서 명성있는 DJ로 경력을 쌓아가면서, 공중파 방송도 타고 관련 책도 펴낼 수 있었다.

일의 특성상 여러 로맨싱 이벤트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오랜 기간 동안 DJ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방탕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오로지 음악만을 위해서 살아왔던 평생이며 가족들에게는 떳떳한 아버지이자 남편, 그리고 아들이었다고 한다.

 

일생을 음악과 함께 보낸 장민욱의 증명이라고나할까? 지금껏 그가 보유한 LP 음반이 수만 장에 이른다.
이를 위해 보관료를 내고 창고를 임대해 두고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의 일터, 뮤직 박스 안에는 그 중 일부가 나와 있다. 신청자의 사연에 따라 턴테이블에 올려질 때를 기다리면서.

 

카페 "추억더하기"는 서울시와 하나은행의 후원을 받아 2013년에 문을 연 사회적 기업이다.
지금까지 노인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종로통 일대, 그러니까 탑골 공원과 낙원상가, 인사동 주변에서 시니어분들이 사교를 나누는 장소다.

홍대 거리가 젊은이들의 핫 한 장소라면 이 지역은 어르신들의 문화가 이어지는 곳이다.
고령화 시대, 우리네 실버 문화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어야 한다.

 

 

 

용량 부족으로 몇몇 이미지는 제외했으니 아래 링크의 오마이뉴스 기사를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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