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가문을 일으켰습니다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왕좌의 게임 캐릭터를 본따 학명 만들기도 - 단칼에 끝내는 인문학 곤충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김춘수의 시구다. 이름을 짓는다는 행위는 그 대상을 우리의 인식체계 안으로 들여와 사랑하게 만드는 일이다. 나태주는 풀꽃에서 "자세히 보야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고 적었다. 시인은 이름표를 더할나위 없이 멋스럽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존재의 시작은 명찰을 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분류학자는 새로 발견된 동식물에 이름을 부여하는 일을 한다. 대부분은 종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이름으로 짓지만, 때로는 코믹한 이름표를 붙이기도 하며 너무 엉뚱하여 설명이 없으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하는 명함도 있다. 우리네 일상에서 분류학자 이외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 몇 가지 특이한 학명을 살펴보자.

 

해리 포터 등장인물의 이름표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의 토머스 손더스(Thomas Saunders)는 기생말벌 신종에 대한 이름을 루시우스 말포이이(Lusius Malfoyi) 라고 적었다. 조앤 롤링의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에 나오는 악당 마법사다. 명명자가 밝힌 작명 이유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말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해충 조절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포이가 모호한 선악의 경계에서 가족을 위해 활약한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다.

 

루시우스 말포이이

▲ 뉴질랜드에 사는 기생 말벌 Lusius Malfoyi. Tom Saunders, Manaaki Whenua - Landcare Research.
ⓒ Saunders, Whenua, Landcare Research.
 

 

호그와트 사냥터지기 해그리드가 키우던 애완 거미의 이름인 '아라고그'를 딴 표본도 있다. 2012년 오스트레일리아 필비아 지역에서 발견한 거미(Aname aragog)와, 2017년 이란 케르만 지방의 고유종으로 기록된 늑대거미(Lycosa aragogi), 2018년 브라질 카라하스 국유림에서 수집한 표본(Ochyrocera aragogue)이 주인공이다.

 

고드릭 그리핀도르 Sorting Hat Spider

▲ Eriovixia gryffindori. 마법학교의 분류 모자를 닮은 거미.
ⓒ Ahmed, Javagal, Khalap
 

마법학교를 세운 고드릭 그리핀도르의 이름을 받은 분류모자거미(Eriovixia gryffindori)는 2016년 인도 남서부 가츠(Ghats)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녀석의 외모는 신입생을 각 기숙사로 배정하는 분류(Sorting) 모자와 똑 닮았다. 명명자는 인도 고고학 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거미학자 자베드 아메드(Javed Ahmed)와 사진가 수무카 자바갈(Sumukha Javagal), 환경보호론자 라자스리 칼랍(Rajashree Khalap).

 

 

 

반지의 제왕을 품은 곤충들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나온 6명의 난쟁이들도 스웨덴의 곤충학자 칼-요한 헤드퀴비스트(Karl-Johan Hedqvist)에 의해 말벌 속명을 받았다. 그는 전 세계 벌목 곤충 5만종 이상의 표본을 만들었으며, 이 컬렉션은 39화에서 소개한 찰스 로스차일드의 벼룩과 함께 런던자연사박물관의 대표적인 소장품이다. 그의 기생벌 포트폴리오 가치를 알아본 박물관에서 헤드퀴비스트가 죽고 난 뒤 2011년에 구입했다.

 

런던자연사박물관

▲ Karl-Johan Hedqvist"s collection. 런던 자연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말벌 컬렉션.
ⓒ Natural History Museum
 

주요 등장인물 빌보와 프로도, 간달프는 멕시코 국립대학의 후안 모로네(Juan J. Morrone)에 의해 바구미속에 이름을 올렸다. 뉴 칼레도니아에 사는 딱정벌레 한 종은 버클리대 곤충학자 키플링 윌(Kipling W. Will)에 의해 2011년 호빗(Abacophrastus hobbit) 명찰을 받았다. 2016년에는 노스 다코다 대학의 연구팀(Eduardo Faúndez & Mariom Carvajal)에 의해 노린재 한 종이 사우론 휘하의 암흑기사 나즈굴(Acledra nazgul) 이름표를 달았다.

 

7왕국 가문의 시조가 된 말벌들
조지 R.R.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 Game of Thrones]는 오바마 대통령이 푹 빠져서 보는 드라마로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 대한민국에서는 [왕좌의 게임]이란 제목으로 방송을 탔으며 이 시리즈에 나오는 7개 가문의 이름을 따서 말벌에 붙인 속명이 라일리우스(Laelius)다. 브라질 곤충학자(Barbosa & Azevedo)에 의해 2014년에 7왕국 가문의 이름을 얻었으며 이 드라마는 HBO의 최고 히트작으로서 당시 기네스북 10개 기록을 경신했다.

약 10년이 지난 뒤 [오징어 게임]이 해당 기록을 갈아치웠다. 2021년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이 역대 가장 많은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OTT 서비스로 방송되는 전 세계 83개국 모두에서 1위를 차지한 대기록이다. 왕좌의 게임이 10년에 걸쳐서 조회수 169억 회를 기록했다면 오징어 게임은 단 8주만에 170억 회를 넘었다.

 

 

해당 기사는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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