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록을 하는 잠자리의 별난 짝짓기
쇠측범잠자리 날개돋이 - 단칼에 끝내는 인문학 곤충기
 

봄 기운이 넘쳐나 따갑게 느껴지는 오뉴월은 뭇 생명들이 기운생동하는 계절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화를 준비중인 잠자리 애벌레를 발견할 수 있다. 서식 하던 물에서 나와 주변의 나뭇가지나 풀 줄기에 매달려 유충 시절의 칙칙한 옷을 벗는다.

대개의 잠자리들이 이른 새벽이나 밤중에 우화하는데 쇠측범잠자리는 정오 경에 탈피를 시작한다. 사진과 동영상으로 잠자리의 우화를 생동감있게 담아봤다. 먼저, 등껍질의 탈피선을 가르며 겹눈과 가슴이 서서히 드러나며 탈피각으로부터 상체를 빼낸다. 힘든 과정이므로 한 동안 쉬면서 숨고르기를 하다가 배마디까지 완전히 빠져나온 뒤 안정적으로 자세를 잡는다.

심장을 펌프질하여 혈림프를 온몸으로 내보내 꼬깃꼬깃한 날개를 활짝 펼친다. 날개돋이 과정에서 여기까지가 가장 역동적이며 빠르게 진행된다. 날개가 제 모양을 갖춘 다음에는 배마디를 늘리는 데 집중한다. 만곡진 배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지며 곧게 펴진다. 우화가 거의 완성되면 이후에는 애벌레 시절에 몸 속에 쌓아두었던 노폐물을 배출한다.

큰 화면으로 보면 가슴과 배마디 사이의 내부 장기가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꽁무니로 오줌방울을 배출한다. 막바지에 이르면 체색이 점점 뚜렷해지면서 검은줄과 노랑색이 어우러진 쇠측범잠자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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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측범잠자리의 날개돋이 10배속 빠르게.

ⓒ Daankal Lee
 

 

쇠측범잠자리라는 명칭에서 접두어 '쇠'는, 그 대상이 작고 볼품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쇠살모사, 쇠오리 등이 그러하다. 전자는 살모사과의 뱀 중에서 색깔도 옅고 몸집도 작은 살모사를 뜻한다. 마찬가지로 후자는 오리와 같지만 체구가 작은 오리를 말한다. '측범'은 '칡'이 변형된 발음이며 '칡 덩굴 같은 범 무늬'라는 의미다.

 

쇠측범잠자리

▲ 날개돋이 후 몸이 단단해질 때까지 쉬고 있는 장면. 시간이 경과하면 검은색과 노랑색이 배합된 성충이 된다.

ⓒ Daankal Lee
 

 

현란한 털을 가진 개나 소를 칡개, 칡소로 부르는 것과 같다. 이와 비슷한 쓰임새를 우리말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리' 와 '붙이' 다. 쇠붙이, 금붙이라고 하면 한통속으로 묶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물건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통용되는데, 대표적인 말이 피붙이다. 또한 개미붙이, 사마귀붙이 등은 각각 개미와 사마귀를 흉내낸 곤충들이다.

한편, 어리호박벌이라고 하면 호박벌의 한 종류이지만 그보다 몸집이 작은 녀석이다. 어리연꽃, 어리개미거미, 어리표범나비, 어리세줄나비 등등이 있다. 이러한 단어들은 한자의 조어력으로도 대체할 수 없었던 우리 고유의 말이다.

 

목에 칼을 채우는 잠자리의 비밀
잠자리류는 하루에 모기를 200마리 넘게 잡아먹는 하늘의 포식자다. 모기 뿐 아니라 파리나 작은 딱정벌레 등을 사냥한다. 애벌레 시절에는 물 속에서 올챙이나 송사리 같은 작은 어류를 먹고 산다. 잠자리는 짝짓기 자세가 특이한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하트 무늬가 연상된다고 말한다. 또한, 암수가 함께 산란을 하는 장면을 자주 접할 수 있는데 그 속을 깊게 들여다보면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Gryllotalpidae

▲ 짝짓기 중인 쇠측범잠자리 한 쌍 목덜미를 잡고 아크로바틱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잠자리의 짝짓기 자세.

ⓒ Daankal Lee
 

 

우선 별난 교미 자세의 이유를 보자. 수놈에게는 생식기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배 끝 부분(제1생식기)에 있고 나머지 한 개는 배가 시작되는 부분(제2생식기, 정자 보관소)에 있다. 제1생식기에는 집게(교미 부속기)와 같은 기관이 있는데 이것으로 암컷의 목덜미를 잡고 다른 수컷과의 짝짓기를 막는다.

때문에 일반적인 자세로는 교미를 할 수 없으며 제1생식기에 있는 정자를 제2생식기로 옮겨서 세대를 이어간다. 이것이 바로 잠자리가 묘기 수준으로 얽혀 있는 비밀이다. 그렇다면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암놈의 목에 칼을 채우는 행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진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수컷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다.

엽기적이게도 수놈의 생식기는 다른 경쟁자의 정자를 파낼 수 있다. 알이 수정 될 때는 후입선출법을 따른다. 즉, 가장 나중에 안착한 정자가 제일 먼저 난자와 수정되므로 최후의 순간까지 방심하지 않고 암컷을 독차지하려는 까닭이다. 이런 행동은 곤충 뿐만 아니라 돌고래와 같은 포유류에서도 흔하게 일어난다.

 

 

침노린재

▲ 물 속의 수초에 알을 낳고 있는 실잠자리류 일부 실잠자리와 물잠자리는 수중산란을 한다.

ⓒ Daankal Lee
 

 

짝짓기가 끝난 뒤에도 암놈이 알을 다 낳기 전까지는 수컷이 놓아주지 않는다. 또한, 수놈이 헤드락을 하지 않는 종은 주변에서 감시비행을 하며 다른 수컷을 막는다. 한편, 신기하게도 실잠자리 무리는 잠수산란을 한다. 어미가 풀줄기를 잡고 물 속으로 들어가 수초에 알을 낳는다. 때때로 검은색의 물잠자리도 수중산란을 한다.

한 여름이 지나고 아침 저녁이 선선해 질 때 쯤이면 갑자기 우리 눈앞에 잠자리가 불쑥 나타난다. 이는 고지대에서 무더위를 피하던 녀석들이 계절 변화를 감지하여 평지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특히나 된장잠자리는 인도양에서 기류를 타고 한반도까지 올라온다. 고추좀잠자리와 된장잠자리가 눈에 띄면 곧 단풍철이 머지 않았다는 얘기다. 가을은 잠자리와 함께 찾아와 붉은 옷으로 갈아 입는다.

 

 

 

해당 기사는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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