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독나방의 떼춤
단칼에 끝내는 곤충기
 

1973년 빌보드에서 1위를 했던 'Tony Orlando & Dawn'의 노래 중에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라는 팝송이 있다. 구전되는 내용을 바탕으로 한 이 노래 가사는, 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치고 나온 사람이 그의 아내에게 전하는 말이다. 아직도 자신을 원한다면 집 앞의 오크 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달라는 내용이다.

리본이 없으면 자신은 그냥 떠나가겠다고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집 근처에 다다른 그는 차마 참나무를 직시할 수 없어 버스 기사에게 대신 봐 달라고 하며 가사는 흘러간다. 어떻게 되었을까? 버스가 마을 산모퉁이를 돌자마자 오래된 참나무에는 수백 개의 노란 리본이 달렸다. 이 노래의 마지막은 I'm comin' home으로 끝난다.

 

Ivela auripes

▲ 황다리독나방의 군무 짝짓기를 위해 수십에서 수백마리가 모여 춤판을 벌리고 있는 광경.

ⓒ Daankal Lee
 

 

아마도 이 가사를 만든 사람은 나비 같은 곤충의 군무를 보고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매년 봄이 되면 여의도 윤중로는 벚꽃을 보기 위한 행락객으로 미어 터진다. 그런데 벚꽃놀이는 저리 가라 할만큼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바로 황다리독나방의 떼춤이다. 5월 경에 층층나무를 찾아보라. 그리고 거기에 애벌레들이 많이 눈에 띈다면, 당신은 지독스럽게도 운이 좋은 사람이다.

수백 마리의 나방이 모여서 너울너울 춤을 추는 광경을 생각해보라. 황다리독나방의 춤사위는 마치 살아있는 하얀 꽃잎이 하늘로 부유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한번 보면 넋을 빼앗겨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될 것이다. 인파에 떠밀린 나들이 보다는, 호젓한 산길에 앉아 녀석들의 짝짓기 춤을 보는 것이 더욱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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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다리독나방의 날개돋이.

ⓒ Daankal Lee
 

 

자연은 스스로 평형을 유지한다
황다리독나방의 한살이를 따라가 보자. 아무 때나 녀석들의 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에서 어떤 한 종이 이상 증식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곤충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평생에 두어 번 볼까 말까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은 이렇게 흥분되는 장면을 거의 볼 수 없을터인데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필자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단지 몇 마리가 나는 장면을 보기만 해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 층층나무를 먹이식물로 하는 녀석들은 오뉴월에 한 장소에 모여서 짝짓기를 하고 짧은 생을 마감한다. 수백 마리나 되는 하얀 나방이 너울너울 춤을 추는 장면을 보게 되면 누구나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글쓴이 또한 이 광경을 보면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경험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잊히지 않는 영구기억이다. 당시의 느낌이 너무나 강렬해서 동영상으로 담는 것을 깜빡했을 정도니까.

우리의 판단으로 황다리독나방은 층층나무 잎을 갉아 먹기에 해충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독불장군 층층나무의 성장을 제어하는 자연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계는 어느 한 종이 웃자라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층층나무는 가지가 옆으로 나면서 층을 이루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생장 속도가 상당히 빠르고 잎이 커서 햇빛을 독차지하므로 다른 나무가 자라는 것을 막는다. 이때 황다리독나방의 출현은 층층나무의 기세를 일시적으로 약하게 하여 다른 나무들이 자랄 기회를 조금이나마 늘려주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황다리독나방에 의해서 층층나무가 죽는 경우는 없다.

 

tiger beetle

▲ 모시 같은 날개를 가진 황다리독나방 성충은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으며 반투명한 모시날개를 가졌다.

ⓒ Daankal Lee
 

 

한편, 황다리독나방은 피부에 알레르기를 일으킨다고 알려져있는데 너무 과장된 측면이 있어 정확히 알리고자 한다. 성충은 만져도 상관이 없고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것은 애벌레의 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민한 사람의 경우에는 불쾌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 눈으로만 보는 것을 권한다. 찰리 채플린이 말했듯이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비극이 될 수 있으니까.

 

 

 

 

 

황다리독나방

▲ 성긴 그물을 짜고 있는 황다리독나방 애벌레 허물을 벗고 번데기가 된 직후는 연노랑색이나 이후 색깔이 진해지며 단단해진다.

ⓒ Daankal Lee
 

 

자연에서 눈에 띄는 색 조합은 조심하라는 의미다. 애벌레는 교통표지판처럼 검은색과 노랑색이 줄무늬처럼 나 있다. 나를 먹으면 '맛이 고약해'라는 표시다. 번데기가 되면서는 벌을 의태(흉내 냄)하여 경고를 하고 있다. 벌에 쏘여 본 포식자는 비슷해 보이는 대상을 피하기 마련이다.

번데기가 되는 장소를 은밀한 곳으로 택하거나 위장을 하지 않는 것도 이런 까닭으로 짐작된다. 고치도 엉성하여 만들어 허술하기 짝이 없다. 번데기는 우화가 임박해지면서 투명하게 바뀌므로 그 속에서 나방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탈피는 상당히 격하게 움직인다. 좌우로 몸을 비틀고 바닥에 스스로 몸을 내리치며 탈파꿈을 위한 몸부림이 가열차다.

 

황다리독나방

▲ 황다리독나방 번데기 우화 직전 투명하게 변한 황다리독나방 번데기.

ⓒ Daankal Lee
 

 

번데기는 우화가 임박해지면서 투명하게 바뀌므로 그 속에서 나방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탈피는 상당히 격하게 움직인다. 좌우로 몸을 비틀고 바닥에 스스로 몸을 내리치며 탈파꿈을 위한 몸부림이 가열차다. 날개돋이한 성충은 노랑색 앞다리와 함께 속이 살짝 비치는 모시날개를 가졌다.

 

독나방

▲ 번데기에서 빠져 나온 황다리독나방 성충. 심장의 림프액을 펌프질하여 날개를 펴고 있는 황다리독나방.

ⓒ Daankal Lee
 

 

수컷의 더듬이는 빗살 모양으로 무척이나 크고 화려하다. 왜냐하면 암컷의 짝짓기 페로몬을 감지해야 하므로 고성능 안테나의 임무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황다리독나방은 1년에 한 차례 발생한다. 6월 초에 우화한 성충은 짝짓기 후 층층나무에 알을 낳고 삶을 마감한다. 겨울을 난 알에서는 이듬해 4월경에 애벌레가 부화하여 5월 하순에 번데기가 된다.

 

 

 

해당 기사는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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