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춧잎을 먹는다고 다 같은 흰나비가 아닙니다
단칼에 끝내는 곤충기
 

한국인의 식탁에서 김치가 빠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김치 종류만 해도 300가지를 넘는다는 얘기가 있다. 하루에 하나씩 맛을 본다고 하더라도 꼬박 1년이 걸린다. 김치의 한자어는 침채(沈菜)로 '담근 채소'라는 뜻이다. 구개음화를 거쳐서 17세기부터는 짐채로 발음했으며 19세기 이후에는 김치로 통일된다. 지금도 남쪽 지방에서는 여전히 짐채라고 말한다.

한편, 겨울에 먹는 김치가 동치미인데 겨울동(冬)자를 써서 동치미로 변형된 것이다. 봄에 먹는 상큼한 김치가 나박김치다. 한자어 나복(蘿蔔)에서 나온 단어로 무에다가 쪽파, 미나리, 사과, 배를 넣어서 국물맛이 달착지근하다. 우리네 속담에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가 바로 나박김치를 뜻한다.

군 시절에 질리도록 먹은 반찬이 고춧가루로 흉내만 낸 양배추김치였다. 식성이 바뀐 지금에 와서는 간혹 양배추김치가 생각나지만 당시엔 억지로 먹었다. 이런 배추와 양배추, 무를 탐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간 곤충이 바로 흰나비과에 속하는 녀석들이다.

 

Pieridae 흰나비과

▲ 배추흰나비 생활사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를 거쳐 성충으로 우화하는 나비의 일생.

ⓒ Daankal Lee
 

'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동요에도 나올 만큼 친근한 나비이지만 세계적으로 십자화과(배추, 양배추, 무, 순무, 갓, 케일 등) 식물을 먹는다. 천적과 적당한 방제가 이루어지면 그렇게 큰 피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생장 환경이 맞아떨어지면 배춧잎이 남아나지를 않는다. 특히나 종령에 이른 유충은 줄기만 남기고 잎을 다 갉아 먹기에 농부들의 미움을 받는다.

4월부터 출현하는 흰나비 무리를 몇 종 살펴보자. 가장 대표적인 종이 배추흰나비로서 배추밭 부근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최근에는 사육 키트까지 판매가 되고 있어 나비의 한 살이를 관찰하기 위해 초등학교에서 많이 쓰이곤 한다. 영어로는 'Cabbage white'라고 하며 석주명 선생이 배추흰나비라고 국명을 지었다.

이르면 남부지역에서는 3월부터 출현하지만 대체로 4월부터 10월까지 수차례 발생한다. 크기는 30mm 정도이며 접사 촬영을 해 보면 날개에 검은 모래알이 산재하고 연노랑색을 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알의 크기가 1mm 정도의 원추형이다.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면 덜 자란 옥수수와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알 상태로 약 5~7일 정도 지내며 부화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자신이 태어난 알 껍질을 먹어서 영양 보충하는 것이다. 이후 녹색의 꼬물거리는 애벌레로 몸집이 점점 커지면서 허물을 벗는다.

 

 

 

Pieris rapae 배추흰나비

▲ 배추흰나비의 여권사진 신화에 나오는 외눈박이 괴물처럼 생겼다

ⓒ Daankal Lee
 

옷을 한 번씩 갈아입을 때마다 나이를 먹는데 3령이라고 한다면 2회 허물을 벗은 상태를 말한다. 4령까지 자란 뒤에는 번데기로 바뀌고 이후 날개돋이하여 성충이 된다. 번데기로 변할 때는 주변 환경에 맞춰서 체색(갈색형과 녹색형)이 달라진다. 어른벌레를 매크로 촬영해보면 축구공 같은 겹눈에 털보임을 알 수 있는데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외눈박이 괴물처럼 보인다.

 

 

 

 

배추흰나비로 착각하게 할 만큼 비슷한 종이 대만흰나비다. 보통 사람이 보기엔 모두 다 흰나비일 테지만 세심히 들여다보면 차이가 난다. 일단 배추흰나비 보다 몸집이 커서 50mm 전후로 자라기도 한다. 가장 큰 구별점이라면 윗날개 끝의 검은 점이 매끈하다면 배추흰나비, 고랑과 같은 굴곡이 있다면 대만흰나비다.

 

대만흰나비 Artogeia canidia

▲ 배추흰나비와 대만흰나비 구별법 날개 윗면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앞날개 끝부분의 검은점 형태로 구분함.

ⓒ Daankal Lee
 

 

같은 흰나비과 무리라서 발생 시기도 유사하다. 다만 먹이식물(식초)은 십자화과에 속하는 냉이류(나도냉이, 속속이풀)와 장대나물이라서 차이가 난다. 성충이 되어서는 개망초와 엉겅퀴 등의 꽃에서 흡밀한다. 배추흰나비는 배추밭에서 날아다니지만 대만흰나비는 산지와 경작지의 경계 부근에서 보인다.

큰줄흰나비도 빼놓을 수 없다. 이름 그대로 줄무늬가 눈에 띄게 굵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몸집이 가장 커서 60mm를 넘기도 한다. 사실, 보통 사람들이 배추흰나비라고 부르는 녀석은 대개 이놈을 지칭하는 것이다.

 

Pieris melete 큰줄흰나비

▲ 큰줄흰나비 여름형 봄형 비교. 발생시기에 따라 줄무늬에 상당한 변이가 있음

ⓒ Daankal Lee
 

 

우리 주변의 산지에서 흔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변이가 상당히 많아서 혼동되기도 하는데 대체로 여름에 태어나는 녀석들은 줄무늬가 진하지 않아서 대만이나 배추로 착각할 수 있다. 그래도 차이점이라면 윗날개 중실부(타원형의 날개맥)에 검은 모래알이 뿌려져있다.

먹이식물은 대만흰나비의 식성에다가 배추흰나비의 먹성까지 골고루 갖췄지만 배추에 큰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더 구별이 어려운 녀석은 줄흰나비다. 식별 포인트는 큰줄흰나비와 달리 중실부에 모래알이 없다. 식초는 십자화과 식물로 바위장대, 섬바위장대, 나도냉이, 꽃황새냉이 등이다.

 

 

 

Anthocharis scolymus 갈구리나비

▲ 갈구리나비의 날개 아랫면 날개끝이 휘어져있어 갈구리나비라 한다.

ⓒ Daankal Lee
 

 

한편, 같은 흰나비과에 속하지만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녀석이 갈구리나비다. 수컷의 날개 끝에 노랑색 점이 있고 갈구리처럼 휘어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무릎 높이에서 부산스럽게 날라다니며 봄에 피는 민들레, 나무딸기, 장대나물 등에서 흡밀한다.

애벌레의 식초는 십자화과 식물인 냉이와 황새냉이, 개갓냉이, 털장대, 갯장대 등이다. 흰나비 중에서는 가장 작은 녀석이지만 날개 아랫면의 카오스 패턴이 단단한 느낌을 준다. 1년에 한차례 4~6월에만 출현한다.

 

Eurema hecabe 남방노랑나비

▲ 남방노랑나비의 짝짓기 거부 행동. 흰나비과에 속한 남방노랑나비 암컷이 꼬리를 한껏 치켜들고 수컷의 구애를 거절하고 있다.

ⓒ Daankal Lee
 

 

 

나비를 쫓다 보면 암컷이 꽁무니를 한껏 쳐들고 풀위에 앉아 있고 바로 앞에서 수컷이 날갯짓을 하고 있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참으로 다정한 모습이다. 그러나 실상은 이미 짝짓기를 마친 암컷이 다른 수컷의 구애를 거부하는 행동이다. 앞선 '단칼에 끝내는 곤충기 2화'에서 소개했던 '애호랑나비의 수태낭'과 비교되는 광경이다.

이런 거절에도 불구하고 집요한 숫놈은 계속해서 암놈 주변을 맴도는데 이 때가 플라잉 샷을 담을 수 있는 기회다. 짝짓기에 정신이 팔려 사람이 다가서도 잘 도망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대를 이어가려는 본능은 자신들의 목숨이 위험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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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사촌나비 Mycalesis francisca

ⓒ Daankal Lee
 

 

해당 기사는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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