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서 쉬를 까는 빌로오도재니등에
흥미로운 폭격파리 애벌레 기생사 - 단칼에 끝내는 곤충기
 

이르면 3월, 늦으면 5월까지 활동하는 빌로오도재니등에. 4월 지금이 UFO 같은 비행능력을 보여주는 녀석들을 관찰할 수 있는 적기다. 벌레는 성가시다는 선입견을 잠시 접어두고 호기심을 발휘한다면 주변의 야산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다. 파리 같은 곤충이 공중에 떠서 정지비행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면 흥미로운 세상으로 들어갈 준비가 끝난 것이다.

재니등에류는 햇볕이 잘드는 흙과 돌이 섞인 땅 위를 선호한다. 외관은 자기 몸집 만큼이나 뾰족하게 튀어나온 주둥이와 함께 벌을 의태(흉내)하여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몸길이는 약 10mm 정도이며 이름이 특이하여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다.

 

Bomber fly

▲ 호버링 하고 있는 빌로오도재니등에. 허공에서 정지비행으로 주변을 탐색중이다.

ⓒ Daankal Lee
 

'빌로오도'는 벨벳을 뜻하는 포르투칼어 'Veludo'에서 왔고 '재니'는 광대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통통한 몸매에 꽁무니가 급격히 빠진것처럼 보이지만 날렵한 날개를 가지고 있기에 딱 들어맞는 명칭이라고 여겨진다. 허공에서 사방팔방으로 방향전환이 자유로우며 급가감속으로 상하고저 위치 전환이 순식간이다.

워낙 빠른 날갯짓은 1/8000초의 카메라 셔터 스피드로도 잔상이 남는다. 신출귀몰하다가 꽃이나 땅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부드러운 솜털이 온몸에 수북히 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가루받이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추측컨대 이른 봄의 추위 때문에 보온기능도 겸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생전략으로 삶을 이어가는 빌로오도재니등에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일이지만, 예전에는 나들이를 가면서 찻간이나 길가에서 애들 오줌을 누이는 일이 흔했다. 아이의 바지를 내리고 '쉬~쉬~' 하면서 소변을 보게 하는 장면 말이다. 쉬는 오줌이라는 뜻도 있지만 구더기라는 의미도 있다. 쉬파리가 그래서 나온 명칭이다. 공중에서 유영하다가 빠르게 오줌을 싸듯 알 또는 구더기를 튕겨내기 때문이다.

재니등에 암컷은 군집생활을 하지 않는 가위벌이나 뒤영벌의 둥지에 접근하여 입구 위에서 쉬를 까는데, 산란이 가까워지면 흙 속의 작은 입구를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이는 아마도 페로몬 같은 생화학적 단서를 포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종의 경우에는 흙 속에 알을 슳어 놓기도 하지만 대개는 오줌을 발사하듯이 재빠르게 알을 쏘아낸다. 이 기상천외한 알까기 습성으로 인하여 영어권에서는 '폭격파리(Bomber fly)'라는 별칭을 얻었다.

 

Bombylius major Linnaeus

▲ 흡밀중인 빌로오도재니등에. 양지꽃 위에 앉아 꽃꿀을 마시려는 장면.

ⓒ Daankal Lee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꽃 위에 알을 낳은 뒤, 흡밀하러 온 벌을 타고 보금자리에 잠입하는 경우도 있다. 1996년에 개봉된 영화 <마이크로코스모스>(Microcosmos)에는 이와 같은 전략으로 세대를 이어가는 가뢰의 생활사가 담겨져 있다. 역광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영상이지만 삶을 이어가는 방식은 치열하고 복잡하기 그지없다.

가뢰의 경우에는 생존확률이 희박하기에 한꺼번에 수백마리의 새끼를 낳지만 재니등에의 경우에는 다배발생(하나의 알에서 여러마리가 나옴)이 아님에도 어떤 기생 전술을 가지고 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빌로오도재니등에

▲ 허공에서 요가 중인 빌로오도재니등에 기묘하게 뒷다리를 접고서 공중을 날고 있다.

ⓒ Daankal Lee
 

아무튼 이렇게 벌집에 잠입한 애벌레는 화분이나 꿀을 먹기도 하지만 숙주(벌의 유충)의 생살을 파먹고 자라난다. 인간의 생각과 판단으로는 도저히 용서하기 힘든 일이지만 자연계에서는 흔하디 흔한 일이다. 조류에서는 뻐꾸기의 탁란이 대표적인 사례이지 않은가. 어른 벌레가 되어서는 수분 매개 곤충으로서 활약하지만 애벌레 시절에는 이렇게 기생하는 삶을 산다.

공중에서 고속으로 비행하기에 촬영이 힘들었지만 10여년 간의 곤충 초접사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까만 주둥이가 날카롭게 나와 있지만 쏘지는 못한다. 그저 꿀을 빠는 용도로 사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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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리꽃등에 정지비행.

ⓒ Daankal Lee
 

 

 

 

Bombylius major Linnaeus

▲ 솜털 푹신한 빌로오도재니등에. 자기 몸 길이만큼 큰 주둥이로 꽃꿀을 먹는다.

ⓒ Daankal Lee
 

 

두 겹으로 이루어진 이 침은 보호 구기(口器, 무척추동물의 입을 총칭)로서 속에 바늘같은 빨대가 숨겨져 있다. 끝 부분은 마디가 있어서 좌우로 약간 구부릴 수 있으며 입술처럼 활짝 벌려진다. 즉, 주둥이를 꽃 속에 밀어넣고 입을 벌린 뒤에 빨대를 내밀어 꿀을 빠는 것이다.

봄꽃이 활짝 피어나는 때를 맞춰 빌로오도재니등에가 허공을 난다. 양지꽃, 미나리냉이, 콩제비꽃, 바람꽃, 앵초, 애기송이풀, 돌단풍, 참꽃마리 등에서 꽃꿀을 마신다. 코로나19로 피로감이 한계에 다다른 지금, 근교를 산책하면서 흥미로운 곤충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울한 일상에 활력소가 될 것이다.

 

 

 

해당 기사는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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