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휴~ 이놈의 승질벌레, 길앞잡이

Cicindela chinensis De Geer, 1774 길앞잡이
Coleoptera 딱정벌레목 - Carabidae 딱정벌레과

 

 

 

봄기운이 완연한 호젓한 산길을 걷다 보면 발치에서 포로롱~ 날라가는 작은 초록색 곤충을 볼 수 있다.
마치 길을 안내하는 것처럼 서너 걸음 앞서서 움직이기에 녀석에게 붙여진 이름이 바로 길앞잡이.
몸집은 약 2cm 정도하며 딱지날개는 청록색과 붉은색, 자주색 등이 어울려 금속성 광택을 자아낸다.
여기에 툭 벌거져 나온 겹눈과 무시무시한 큰 턱,
주변 상황을 감지하는 민감한 더듬이와 신경에 직접 연결된 억센 털 등이 놈들을 상위 포식자로 자리매김 시키고 있다.

 

 

 

바퀴벌레가 빠르다고는 하나 길앞잡이에 비하면 하룻강아지가 되어 버린다.
몇 발자국 앞에서 워낙 빠르게 움직이므로 잠자리채가 아니고는 결코 채집을 할 수 없다.
손을 뻗어 잡을라 치면 휘리릭~ 앞서 가고 뒤따라서 쫓아가면 사르륵~ 도망친다.
몇번 이렇게 당하고 나면 슬슬 오기가 발동한다.
꼭 한번 포획을 해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포획이란 사진에 담는 것을 뜻한다. 그것도 매크로Macro 이미지로 말이다.
즉, 곤충의 겹눈 구조까지 뚜렷히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대상물을 몇 배로 확대해서 찍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렌즈와 피사체가 맞닿을 정도로 아주 가까이 다가가야만 한다.
따라서 녀석들의 이런 행동은 사진가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일이 된다.

 

 

 

 

뙤약볕이 내려쬐는 오뉴월 한 낮에 진액을 흘려가면서 놈들과 술래잡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성질이 난다.
그래서 나는 길앞잡이를 성질벌레라고 부르고 있다. 아니 이런 표현도 모자란다.
감정을 무지막지하게 실어서 승~질벌레라고 칭한다.
이렇게 골질을 몇 년 하다가 올해 드디어 승질벌레를 이미지 센서 가득히 담아낼 수 있었다.
그것도 트리밍 하지 않은 완벽한 상태로 말이다.

 

 

그런데 사실, 길앞잡이의 이런 습성은 요즘 말로 치자면 렉lack이 걸린 상태다.
전광석화처럼 빠른 움직임을 미처 CPU가 처리하지 못하는 병목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사냥감을 찾기 위해 사사삭~ 움직였으나 뇌 용량이 가득 차서 진공상태가 --자신이 왜 움직였는지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렇게 뇌세포의 체증이 다 풀려야만 비로서 정상으로 돌아온다.
길앞잡이가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이유다.

 

 

 

아하! 유레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승질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감정과 이성은 별개의 문제이므로, ㅎㅎㅎ

 

 

 

길앞잡이는 곤충계의 탐욕스런 약탈자다. 인간의 시각으로 보자면 포악하기 이를데 없다.
가리는 것이 없이 기회만 된다면 거의 모든 곤충들을 잡아 먹는다. 게다가 동종포식도 서슴치 않으니 사마귀가 울고 갈 정도다.
이처럼 제 동족을 잡아먹는 일은 벌레들의 세상에서는 흔한 일이다.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일, 그리고 그것이 사라지지 않는 것에는 분명히 우리가 모르는 진화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분별심을 잠시 거두고 자연을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참고로 곤충 촬영을 비교적 수월하게 할 수 있는 때는 대략 세 가지 상황에서다.
식사중이거나 교미를 할 때나 알을 낳는 상태에서는 경계심이 누그러진다.
그러므로 발견만 할 수 있다면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은 높아진다. 아주 쬐끔~

 

 

 

 

아이참, 써 놓고 보니 한 가지 경우가 더 있었네.
이른 아침이나 저녁 무렵에는 --물론 야행성 곤충은 빼놓고-- 벌레들의 움직임이 둔해 진다.
왜그러냐 하면 녀석들은 온도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곤충들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때는 한낮, 그러니까 오전 11시 경부터 오후 4시 정도까지이다.
이 시간에는 무척이나 빠르게 움직이므로 아무리 노련한 사진가라 할지라도 피사체를 온전히 담아내기가 어렵다.

아뭏든 엄청나게 고생을 하면서 기록으로 남겼는데, 두 번 다시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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